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조회 1765 | 2017-12-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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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이야기 =

나이 예순, 내 직업은 대리운전기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내 일은 시작됩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호출을 기다리면서 밤거리를 서성입니다.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은 뛰거나 걸어야 하는 이 일이
이제는 힘에 부치기 시작합니다.

그런 나에게도 빛나는 시절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했고 가정도 꾸렸습니다.
곧 아들 둘이 태어났고,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성실하게 할 일만 하면 안정된 삶은 계속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평생직장이 당연하던 그 시절 미래를 의심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1997년, IMF와 함께 내 기대는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삶은 쉽게 일으켜지지 않았습니다.

대리운전 손님으로 아들 또래를 만날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납니다.
변변히 뒷바라지도 못 했는데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 대학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아들이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지만
노후준비도 시작조차 하지 못한 내가 아들에게 혹여나
짐이 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만 합니다.





= 아들 이야기 =

저는 모두가 선망하는 명문대에 다닙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 학원을 다니는 것도
집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혼자 독하게 공부했어요.

TV에서나 보던 거대한 학교 정문을 들어서던 날,
제 꿈이 이뤄졌다는 생각보다는 앞으로 고액과외가 줄을 설 테니
집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사라지고 녹록지 않은 현실이 보였습니다.
근로 장학생부터 학교 앞 분식집 서빙,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일해야만 했어요.
그런데도 학비에 생활비까지 3천만 원 빚이 생겼고
인생을 마이너스로 시작하게 되었죠.

언제부터였을까요?
'이보다 더할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사는데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불안했어요.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집안 환경이 달라졌고
그때 기억이 제 몸과 마음에 또렷이 새겨진 것 같습니다.
가정을 이룬다면, 책임감이 더해질 텐데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두렵고 불안하기만 해요.

얼마다 더 열심히 살아야 불안하지 않게 될까요?
그냥 다 포기하고 살아가는 편이 나을까요?

– EBS 다큐프라임 특별기획 '감정 시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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