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협상이 필요한가

조회 2355 | 2019-01-0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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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성종 때인 서기 993년,
거란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습니다.
거란의 적장 소손녕은 고려를 향해
"강변까지 나와서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고려의 군신들은 우리의 군영 앞에 나와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기겁한 고려조정에서는 항복하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고려의 뛰어난 재상 '서희'는 단신으로 적진을 찾아가
소손녕과 담판을 지었습니다.


= 소손녕 =
고려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 영토의 대부분은 우리 영역 안에 있으며
그래서 고구려의 옛 영토는 우리 땅이다.
그러니까 그 영토를 내놓아라!

= 서희 =
우리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고려라고 이름을 지었고,
수도가 평양인 것도 고구려를 이으려는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본다면 거란의 동경도 고려의 땅인데
누가 누구한테 침략한다는 것이냐?

= 소손녕 =
그럼 왜 우리 거란과 더 가까운 위치이면서
송나라 하고만 교류하는 것이냐?

= 서희 =
거란과 교류를 못 한 건 여진족이 막고 있어 그렇다.
거란이 여진을 몰아내고 그 땅을 우리한테 준다면
그때는 거란과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7일 밤낮으로 이루어진 서희와 소손녕 간의
외교협상은 결국 서희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넓은 혜안으로 정세를 살핀 서희는 당시
거란의 주적은 고려가 아닌 격전을 벌이던 송이었고,
고려 침공은 송나라와의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름 높은 서희의 외교담판은
거란의 대군을 물러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평안북도 서쪽 일대인 강동 6주를
고려의 영토로 얻어내고, 훗날 거란과의 전쟁에서
양규나 강감찬 같은 명장들이 활약할 수 있는
기틀을 세워 주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서희가 외교관으로서만
주목받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역사가들은 서희가 고려와 거란 전쟁 승리의
포석을 마련한 뛰어난 국정 설계자이자
희대의 천재 전략가라고 말합니다.

장기적인 전략적 안목과 대국을 보는 시야는
외교관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이긴 하지만,
서희에 대해 그저 외교관이라는 특정 지위만
내세우는 것은 어쩌면 서희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 오늘의 명언
평화는 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분쟁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루는 능력이다.
– 로널드 레이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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