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대말 교육 vs 평등언어 교육

조회 2684 | 2014-04-1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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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년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룩하자,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히딩크식 리더십'을 배우자는 열풍이 일었다. '선후배간 반말 사용'도 히딩크식 리더십의 주요 내용이었는데, 여기에는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말의 형식을 중요한 예절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반말 vs 존댓말 논쟁, 과연 아기에겐 어떤 말을 가르쳐야 할까?

'반말'은 자유로움의 표현이라는 주장
몇 년 전부터 대학가에서는 평등한 선후배 관계를 위한 '반말 쓰기' 운동이 벌어져왔고,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직급과 상관없이 일관되게 반말을 쓰고 있다.
이는 '예의 바른 사람'보다는 '개성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권위'보다는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한몫을 차지한다. 공동 육아에서 반말을 쓰는 이유 또한 다르지 않다. 어른과 아이가 평등한 관계에 놓일 때 아이는 자기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진지한 대화가 가능하며, 이런 관계 속에서 아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반말 사용은 이제 막 언어를 통해 세상과 만나기 시작하는 어린아이들이 어른에게 주눅 들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충분히 제공하려는 수단일 뿐이라고 한다.
재미난어린이집 박효정 원장은 '반말은 무례함이 아니라 친근함의 표시'라며, 아이들과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아이를 버릇없이 키우는 게 아니냐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지만 아이들이 6~7세가 되면 일부러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어른에게 깍듯하고 공손하게 존댓말을 해요. 어릴 때 평등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권위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내세울 수 있는 독립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 어린이집 내에서 전혀 존댓말을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소꿉놀이에 열심인 6`~7세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치킨집 아저씨가 되어 "뭐 드실래요?" "치킨 3마리 주세요." "기다리세요." 등 존댓말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다만 다른 아이들과 달리 존댓말을 공경심의 일환으로 사용하지 않고, '놀이 언어'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박 원장은 반말 사용이 평생 존댓말을 부정하고 반말만 쓰겠다거나 일반적인 사회 규범을 거부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며 말의 형식과 내용 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인다고 덧붙였다.

 

예절 교육의 출발은 '존댓말'이라는 주장
아이가 부모 이외의 다른 어른들과 만날 기회가 잦아지는 시기가 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존댓말을 가르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총동원한다. 과거 대가족 제도에서는 부모가 조부모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올바른 존칭과 말을 익혔지만 핵가족이 보편화된 요즘은 아이들이 보고 따라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부모가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존댓말을 가르치는 엄마들은 "언어는 습관이므로 평상시 경어를 잘 사용하지 않다가 갑자기 어른 앞에서 존댓말을 하게 되면 아이 스스로 어색하게 느끼거나 틀리기도 쉬워 어려서부터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였다. 그러나 이들도 '존댓말이 어른의 입장을 고려한 권위적인 예법'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아이가 존칭을 쓰거나 존댓말로 말하면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진이(19개월) 엄마 양지나(39세) 씨는 손사래를 쳤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깍듯이 지켜야 하는 게 예절이잖아요. 아이에게 존댓말을 가르치다 보면 부부끼리도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서로를 존중하니까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되요. 아이와 대화할 때도 진지한 태도로 상대방의 말에 귀기울이게 되고요. 아이가 버릇없다고 할 때 열의 아홉은 반말 문제잖아요. 엄마들끼리도 다른 집 아이가 말을 함부로 쓰고 버릇없이 굴면 그 아이 엄마를 슬슬 피하더라고요.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니까요."

"타인 존중의 마음 담아야 진짜 존댓말"
아이에게 존댓말을 가르치는 건 단순한 언어 자체의 교육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존댓말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매번 지적되는 고질적인 문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요즘 아이들에게 전통 유교식 언어 예법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사용 가능한 존댓말을 제대로 가르치자는 주장이 늘고 있다.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갖기 위해서 반말을 쓰기보다는 서로 존대를 하는 어법을 사용하자"는 의견과 "'~하오', '~하게'와 같은 다양한 하대체를 되살려 윗사람에 대한 존중 의식을 살리는 우리말 어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무조건' 반말을 사용해도 무방하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무조건' 존댓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예의'가 좀더 융통성 있게 변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말의 근본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다
존댓말이든 반말이든 말의 형식은 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의사 전달 및 감정 표현을 상황에 맞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선택되어야 한다. 사실 반말을 쓰면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존댓말을 쓰면 존중하는 것이라고 누군들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반말을 통해서만 인격적으로 평등해질 수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똑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지는 법이고, 말 속에 어떤 의미를 담는가에 따라 그 말이 아름다운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가 결정되는 법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도 말의 근본이 '마음'에서부터 시작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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