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는 최 부자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부잣집이 있었다고 한다.
최 부자 집에는 몇 가지 가훈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이는 '재산증식의 도덕성'을 강조한 것이다.
최 부자 집은 내가 잘살려면
형제, 이웃 사촌 모두가 다 잘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즉 이웃이 편해야 내가 편하지,
이웃이 불편한데 내가 편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최 부자 집의 가훈 중 또 하나는
'만 석 이상 하지 마라!'이다.
토지가 좁은 영남지방에서 만 석 이상의 소작료는
반드시 무리가 뒤따라 누군가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소작료를 만 석으로 고정하자 땅이 늘면 늘수록
최 부자 집의 소작료는 낮아졌다.
최 부자 집이 부유해지면 소작인의 곳간도 덩달아 불어나는
독특한 경제 형태였다.
이른바 '상생의 경제'였다.
그래서 소작인들은 최 부자가 더 많은 땅을 가지길 원했고
팔 땅이 있으면 앞다투어 최 부자 집에 알렸다고 한다.
마지막 가훈,
"어렵고 힘들 때 이웃과 함께하라!"
풍년의 기쁨을 함께 누리면
흉년의 아픔 또한 이웃과 함께 감수하는 것이
부자의 도리라 믿은 최 부자네 사람들이었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최 부자 집의 명성을 널리 알리고
12대 400년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