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하나의 기쁨"이며 "자연과 책은 보는 눈이 임자". -에머슨-
봄이 오면 부동산도 기지개를 켠다. 신학기가 되고 새로운 교육정책이 나오면 여지없이 집값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명문학군인가, 학원은 가까운가.’ 이사를 결심한 부모들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그런가 하면 취업이나 이직?진학으로 인해 새로운 곳으로 이사해야 할 때 편의시설이 가까운지, 교통은 편리한지를 염두에 둔다. 반면 동네에 공원이나 숲이 있는지, 집의 창문으로 나무가 보이는지 등은 간과하기 마련이다. 도시에서의 생활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상에서 그리 중요한 요인이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녹지가 있는 환경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주변에 녹지가 있을 경우 주의집중 능력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 대학교 기숙사의 창문으로 시멘트 건물이 보일 때보다 나무가 보일 때 주의?집중력이 높은 경향이 있다. 실제로 창문가에 나무 한 그루라도 있었던 사무실과 창문으로 빽빽한 건물만 보이는 사무실 사람들 간의 수행 정도가 서로 달랐다는 연구도 있다. 창문으로 나무가 보이는 사무실 사람들이 훨씬 더 수행 수준이 높았다. 또 산만한 아이들, 즉 과잉활동 주의력 결핍(ADHD) 아동의 경우에도 녹지 활동을 통해 자연에 노출시켰을 때 주의 기능이 더 증가하였다.
환경심리학자인 테일러(Taylor)는 미국 시카고 지역의 대규모 공공 주택 단지의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자연 환경이 아이들 심리와 관련이 있는지를 연구하였다. 집안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에서 얼마나 녹지가 많은가와 그 집의 아이들이 얼마나 강한 집중력, 충동 억제, 만족 지연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녹지가 많은 집의 아이들일수록 집중력이 높고 충동을 더 잘 억제하였다. 또 주변 유혹에 약해져 즉각적 만족을 취해 버리는 게 아니라 만족을 지연시켜 궁극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만족 지연 능력이 높았다.
또한 녹지 환경은 인간의 스트레스를 회복시켜 준다. 바로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복이론이다. 자연은 원기를 회복시키고, 활력을 증진시키며,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효과가 있다. 이를 보여주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 텍사스 대학의 연구자 율리히(Ulrich)는 작업 중 과실로 발생한 끔찍한 사고 장면을 보여주어 사람들에게 인위적으로 스트레스가 일어나게 하였다. 그 후, 이들을 집단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내용의 비디오테이프를 보여주었다. 어떤 집단에겐 숲이나 들풀 등 자연풍경에 관한 것을 보여 주고, 다른 집단에겐 도심지 도로나 빽빽한 상가 장면들을 보여주었다. 그러고 나서 스트레스의 정도를 나타내는 심장박동 혈압과 정서 상태에 대한 심리검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도심의 풍경을 본 사람보다 자연풍경을 본 사람들이 긴장과 피로를 더 빨리 해소했고, 더 쉽게 활력을 회복하였다. 자연 환경은 현대 사회에서 급증하는 스트레스를 감소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늘어난 고층 사무실 빌딩과 고층 아파트만큼의 녹지 환경이 필요하다. 녹지는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로부터 쉽게 회복되고 과다한 경쟁사회에서의 공격성을 낮추게 한다.
세계적인 공원들을 보라. 숨 막히는 고층건물들로 들어찬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경우가 많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 런던의 하이드 파크, 홍콩의 빅토리아 파크, 파리의 룩상부르 공원 등, 치열한 경쟁사회를 주도하는 도시일수록 도시 한가운데에서 녹지를 제공하는 공원들이 있다. 또한 그것을 지속적으로 가꾸고 관리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말 그대로 바쁜 일상에 쉼표를 주는 것이다.
물론 녹지만으로 도시화로 인한 환경문제를 모두 해결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시의 지극히 제한적인 공간 속에서 갇혀 지내야만 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약간의 쉼, 약간의 자연 공간이 현대인의 일상에 생각보다 더 커다란 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나무 한두 그루는 어쩌면 우리들이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보탬이 될지도 모른다.
서울신문 2011. 2.25.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