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능력은 모든 학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기초 능력이다. 수학이건 과학이건 사회과목이건 읽을 줄 알아야 공부를 할 수 있다. 다른 과목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글을 읽지 못한다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래서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익히게 하는 것도 언어, 한글이다. 한글을 가르치는 시기도 점점 빨라져서 첫돌이 되기 전에 한글 학습을 시작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너무 이른 문자교육이 학습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발달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지원 씨는 세살바기 딸에게 방문학습지로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한 달만에 동화책을 술술 읽을 정도로 한글을 빨리 익혔다. 그녀는 아이가 언어영재가 아닐까 하는 기대까지 갖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얼마전 아이가 뜻이 맞지 않는 엉뚱한 문장과 단어를 반복하는 것을 발견하고 아동 전문 상담기관을 찾았다. 상담 결과 '언어발달 지체'라는 판정 이 나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줄만 알았는데 '발달 지체'라니 부모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아이는 반복해 배운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을 뿐 스스로 생각해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는 아이가 책을 읽을 줄 알고 어휘도 풍부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단어의 뜻도 잘 몰랐다.
최근 상당수의 취학 전 아이들이 이런 문제를 갖고 상담기관을 찾는다. 전문가들은 원인이 대부분 문자 위주의 한글학습에 있다고 지적한다. 유아에게 적합한 언어학습 방법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글자부터 익히게 하려는 것이 문제라는 설명이다.
한글을 처음 배우는 유아는 글자보다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느낌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아이의 머리 속에 구체적인 사물의 모습이나 느낌이 들어 있지 않으면 글자는 단순히 까만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사물을 경험하는 방법은 사진이나 그림보다 오감을 이용한 직접 경험법이 좋다. 직접 보고 만지며 경험한 사물은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경험을 통해 실제 사물과 말소리를 충분히 익힌 후 문자 학습을 통해 이들과 글자 사이의 연관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야 한다. 전문가들은 그런 다음 아이가 글자에 관심을 보이고 질문을 시작할 때가 문자교육의 적기라고 말한다.
영재 교육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에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글자나 숫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글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 중요한 시기에 글자를 가르치느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꽃'이라는 글자를 한 자 더 아는 것 보다 진짜 꽃을 하나라도 더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