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통합
1592년, 일본의 돌연한 침략으로 조선은 바람 앞의 등잔불이었습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초유사 김성일이 각지로 보낸 초유문이 선비와 민중을 일깨웠습니다.
왕조실록은 초유문을 ‘어리석은 이도 듣고
마음을 움직이고 눈물을 흘리는 글’이라고 평했습니다.
김성일이 임란의 위기 상황에서 초유사에 임명된 까닭은 당파에
구애되지 않고 백성을 위해 직언하기로 이름 난 그의 성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 남명학파인 최영경이 모함으로 억울하게 옥사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왕에게 나서서 그의 복권을 직언하기도 했습니다.
이 일로 훗날 김성일의 의병활동은 남명학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성품은 임란 때
의병과 관군의 갈등을 수습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습니다.
특히 곽재우와 경상감사와의 갈등으로 곽재우를 처벌하려는
기색이 보이자 이를 원만하게 조정하는 역할도 해냈습니다.
그리고 임란의 3대 대첩인 진주대첩을
관군과 의병을 총지휘해서 큰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실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은 서해 입구를 막았고, 김성일 등은 진주 관요를 지켜
적이 곡창인 호남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소통은 개인의 이익을 보지 않는 성품과 마음의 진실함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위기를 이기는 통합은 바로 이러한 소통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김도현 / 전 문화체육부 차관
*** 지하철 사랑의 편지에서 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