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약속

조회 1617 | 2014-12-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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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약속

 

 

우리 부부는 10년 넘게 한 달에 한 번, 매월 28일을 결혼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젊었을 때는 돈도 시간도 없어서 아내의 존재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았다.

결혼생활 30여년이 지나 황혼 길에 들어서고 나서야

아내의 주름진 얼굴에 짙게 깔린 삶의 무게만큼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매월 한 번 갖는 결혼기념일이지만 쉽게 지켜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간혹 의견 충돌이 생길 때면 덜컥 이번 결혼기념일은 힘들겠구나 싶어진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같이 에버랜드에 가자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 틈에 끼여 밝은 모습과 어여쁨을 자랑하는 꽃들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어색한 분위기는 저만치 사라지고 만다.

한 번은 할 얘기도 동이 나고 시간이 무료해질 즈음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살면서 나에게 가장 섭섭하고 힘이 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아내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당신의 언어폭력이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뭘 알아, 빨리 빨리, 시끄러워.” 이 세 마디가 가장 힘들게 했다고.

그 말을 들을 때면 당신에게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었단다.

나는 이후로 그 말을 안 하겠다는 다짐을 위해 한 번 말하는데

벌금 만 원을 내겠다고 했다. 초기에는 많은 벌금을 물었지만

요즘 아내는 도리어 돈벌이가 시원찮다고 투덜거린다.

소소한 얘깃거리를 나누며 오솔길 자락을 올라

소박한 수제비 한 접시에도 아쉬움이 없다.

어느새 아내의 시선을 통해서 세상을 보며 사람 사는 모습을 찾는다.

 

 

류중현 / 발행인

*** 지하철 사랑의 편지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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