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꿈꾼다

조회 2137 | 2016-04-2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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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 소년 호날두
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가난이 너무 싫었지만 도망치고 또 도망쳐도 결국 가난은 나를 잡아먹었다.
나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다. 아버지가 술은 마시면 나는 너무나 두려웠다.
형은 마약 중독자였고 약에 취해서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가난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청소부 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였다.
청소부 일을 하는 어머니가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빈민가 놀이터에서 혼자 흙장난을 하면서 동네 친구들이 축구하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내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나를 축구팀이 넣어주지 않았지만 원망하지는 않았다.
내게로 우연히 날아온 축구공을 찼을 때 나는 처음으로 희열이란 것을 느꼈다.
"어머니 저도 축구가 하고 싶어요. 축구팀에 보내주세요"
철없는 아들의 부탁에 어머니는 당황했다.
자신의 형편으로는 비싼 축구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 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무시하지 않았고 나와 함께 이곳저곳 팀을 알아봐 주셨다.
겨우 저렴한 가격에 팀에 들어간 나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패스 한번 받지 못하고 조명이 꺼지고 모두가 돌아간 뒤에는 혼자 남아 축구공을 닦고, 낡은 축구화를 수선하는 일을 도맡아 해야했다.
그렇게 축구를 하면서도 기뻤던 나는 어느 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정상인 보다 두 배 정도 빠르게 심장이 뛰는 증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앞으로 운동을 계속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다행이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하면 정상인만큼은 아니라도 많이 호전 될 수 있다고 했지만 값비싼 수술비를 지불할 형편이 아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형은 내 수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했고 일년 후 온 가족이 모은 돈으로 마침내 수술을 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재활치료까지 마친 후 나는 더더욱 열심히 훈련했다.
비록 동료들에게 패스를 받지 못해도 그냥 공을 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 데뷔하게 되었다.
수많은 관중, 서포터즈, 스포츠 기자들, 그리고 유명 축구팀 스카우터들. 내가 바라고 바라던 축구장이었고, 난 그 무대에서 "심장이 터져도 좋다."는 마음으로 죽을 각오로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나의 데뷔전이 끝났고, 나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한 사람은 다른 리그 축구팀 감독이었고, 그는 나를 이적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것은 전율이었다.
그 곳은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팀이었고,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사람은 최고의 축구 감독이라 평가 받던 ‘퍼거슨 감독’이었다.
전화가 끝난 후 나는 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눈물이 나고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흐느끼며 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더 이상 청소부 일을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이 수화기를 잡고 울고 계셨다.
구멍난 축구화에 외톨이, 심장병을 가진 소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되었다.

호날두는 1985년 포르투갈에서 출생했고, 축구 선수 중 최고의 몸 값을 받는 최고의 선수입니다.
국제프로축구선수협회 신인상, FIFA 올해의 선수상, UEFA 최우수 선수상, 국제축구베스트 일레븐에 등극한 최고 중의 최고인 선수이며,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는 자선가이기도 합니다.
공익을 위한 광고는 조금의 돈도 받지 않고 촬영하며, 소말리아에 300억을 기부했고 큰 병을 앓고있던 자신의 팬에게 수술비 전액을 지원하기도 했고, 아동질병 퇴치와 아동구호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호날두는 운동선수에게 흔한 문신하나 없는 깨끗한 몸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주기적으로 헌혈하는 그가 문신을 하면 일정기간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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