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게 웃긴 남동생

조회 1902 | 2017-01-2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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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남동생 하나가 있다.
이름은 찬이. 근데 얘가 되게 웃긴 녀석이다.
찬이가 네 살 땐가. 쭈쭈바를 쭉쭉 빨면서 집에 들어왔다.
분명히 사준 적이 없는데, 어디서 쭈쭈바를 구했는지
당당하게 물고 오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궁금해서 찬이에게 물었다.
"찬아, 이거 누가 사줬어? 뒷집 예슬이네 엄마가 사 줬어?"

그러자 찬이는 눈을 크게 뜨고는, 어눌한 발음으로 신나게 답했다.
"엄마, 내가 아이스크림 꺼내서 친구들 다 나눠 줬어. 잘했지?"
그러고는 침을 질질 흘리며 너무나 맑게 웃는 것이 아닌가.
엄마는 얘 좀 보게, 하는 표정으로 찬이를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엄마는 집 앞 슈퍼에 가면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줬는데
그때마다 우리에게 원하는 걸 직접 꺼내도록 해주었다.
찬이는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슈퍼에 가서
손수 쭈쭈바 하나씩을 꺼내 나눠 줬다.

아이스크림 냉장고하고 찬이의 키가 비슷해 슈퍼 아주머니조차 모르고 있었다.
엄마는 슈퍼 아주머니에게 사과하고 값을 치르셨다.
그게 벌써 이십 년이 지난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여덟 살이고 찬이가 다섯 살 때, 우리는 텔레토비를 좋아했다.
정확히는 찬이는 보라돌이를 나는 뽀를 좋아했다.
텔레토비는 방송 끝에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 중의 한 명이 다시 나와
'친구들 안녕!' 하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루는 찬이와 내가 방송 끝에 누가 나올지 놓고 내기를 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뽀가 나올 것이다.',
'아니다. 저번에 뽀가 나왔으니 보라돌이가 나올 거다.' 하면서
어눌한 말투로 쪼잔하게 투덕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인사가 남았다.
누가 나올지 잔뜩 긴장해 있는 통에 텔레비전 주위는 긴장감까지 돌았다.
그날 인사를 하러 나온 것은, 나의 빨간 뽀였다!
얄미운 찬이를 이겼다는 생각에 나는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찬이가 너무나 서럽게 우는 것이 아닌가.
'내가 뽀 나오란다고 빌어서 뽀가 나온 것도 아니고.'
도저히 그칠 것 같지 않은 찬이를 보다가
엄마는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다음에는 꼭 보라돌이가 나오도록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엄마는 수화기를 들어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
왜 보라돌이가 마지막에 나오지 않느냐고,
다음에는 꼭 보라돌이가 나오게 해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의 통화를 듣고서야 찬이는 젖은 눈망울을 쓱 닦아내고
"엄마, 진짜야?" 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 다음번 방영 날 정말 보라돌이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우리는 엄마의 전화가 진짜였다고 믿어버렸다.
텔레토비는 영국 방송인데 엄마가 한국말로 통화했다는
사실은 새까맣게 모르고.






찬이가 여섯 살 때 우리 집에는 큰일이 벌어졌다.
엄마와 나는 집에서 자는 찬이를 두고 동네 아줌마들과 옥수수를 나눠 먹었다.
잠시 후에 집으로 돌아오니 찬이가 어디론가 휘리릭 사라져버렸다.
신발장에 걸어 놓았던 집 열쇠도 찬이와 함께 사라졌다.

여섯 살짜리 꼬맹이가 혼자 갈 데가 어디 있을까.
엄마는 찬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놀랐고,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찬이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신발이 짝짝이인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찬이를 찾아 뛰어다녔다.
전화를 받은 아빠도 당황해서 집으로 바로 달려왔다.
우리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찬이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찬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해는 어느새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동네 친구 예슬이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 동생 찬이를 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찬이는, 잠에서 깼는데 집에 아무도 없어서 예슬이네로 갔단다.
예슬이와 내가 친하니까 거기 가면 나를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현관문도 단단히 잠그고
열쇠도 꼭 품고 왔다고 말하는 찬이는,
우리를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 눈물 많고 침 질질 흘리며 웃던 꼬맹이가 어느새 커서 군대에 갔다.
이번에 6박 7일 휴가를 나오는데 집에는 이틀만 있겠다고 한다.
이미 친구들과 만날 계획을 다 짜놨다나 뭐라나.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먹으며 찬이 이야기했다.
이제 커서 가족은 찬밥이라면서 뒷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어릴 적 이야기로 이어졌다.

쭈쭈바 이야기를 할 땐 웃겨서 숨이 넘어갈 뻔했다.
"걔가 참 순했어. 그땐 진짜 놀랐는데." 하면서.
그렇게 한바탕 웃다가 어느 순간 먹먹함이 맴돌았다.
아빠가 숟가락을 탁, 놓으며 말했다.
"아, 찬이 보고 싶다."

– '사랑은 수많은 이름으로 불어온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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