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이러저러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나봤는데 아이가 7세가 되니 나름대로 잘한 선택과 후회되는 일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에 분명하게 잘 했다 싶은 게 바로 ‘미술’이다.
빠르면 4세, 늦어도 6세쯤 되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미술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엄마의 성향에 따라 명화를 주제로 제법 그럴싸한 영재미술 커리큘럼을 자랑하는 미술학원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미술학원 원장의 프로필을 먼저 살피는 엄마도 있는가 하면 멋진 인테리어와 시설을 주의깊게 보기도 한다.
물론 ‘엄마표 미술’을 실천하는 엄마들이 가장 많다. 나 역시 아이가 어렸을 때는 키즈맘아트 (www.kidsmomart.com) 나 제원상사 (www.jwss.co.kr)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 미술 재료를 구입하거나 한 달에 한 번, 4회분의 미술 재료를 집으로 보내주는 ‘눈높이 아티맘’ 등을 신청해 집에서 미술놀이를 해주었다.
아이가 5세가 되자 나 역시 다른 엄마들처럼 미술학원을 알아보았고 집 주변의 몇 곳을 둘러본 뒤 단독주택 1층을 아틀리에로 쓰는 작은 학원을 선택했다. 고백하자면 내가 반한 것은 원장선생의 화술도, 예술적 감성이 넘치는 인테리어도, 알차 보이는 커리큘럼도 아니었다. 아니, 이 미술학원은 이런 게 아예 없었다.
원장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오가면서 아이들의 작품을 보여주며 엄마들이 함께 감상해주길 원했고, 누군가 커리큘럼을 묻자 그냥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한다고 답했다. 순간 함께 간 엄마들의 얼굴이 실망에 차 오이처럼 길어졌고, 나 역시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때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작은 정원이었다. 인위적으로 가꾸지 않은 듯 보였지만 실로 정성 없이는 일굴 수 없는 정원에는 까마중, 참나리, 금강초롱 등이 소박하게 자라고 있었다.
포도넝쿨 아래 놓인 물감으로 얼룩진 의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몇몇 엄마들은 그냥 발길을 돌리기도 했지만 정원에 꽂혀서 아이를 보내기로 했다. 이런 정원을 가꾸는 감성이라면 아이의 미술적 감성도 잘 키워줄 것 같았다.
그 학원에 다니면서 아이는 사시사철 이름이 다른 꽃과 나무를 스케치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사이를 오가며 놀거나 덜 익은 포도 알을 따 먹곤 했다. 어떤 날은 2시간 내내 아동용 망치를 들고 다니며 벽에 못질을 하고, 한여름에는 모래놀이터에 물을 뿌리고 모래 반죽으로 뭔가를 만들며 놀았다.
7세가 되자 아이의 그림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떠나는 엄마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미술학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다. 그림 실력이 좋아졌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술을 소화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작년 가을, 아이와 아이의 동네 친구들에게 작은 전시회를 열어주었다. [멋쟁이 낸시는 자신만만 화가]라는 한 권의 책과 그간 미술학원에서 원장 선생에게 배운 자유로운 작업이 단초가 되었다.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여서 책을 돌려 읽고, 공동의 작업도 하고, 각자 그림도 그렸다. 전시회 날, 잭슨 폴록처럼 큰 종이를 깔고 아이들이 물감을 뿌리며 놀기도 했다.
동화책의 주인공 낸시처럼 아파트 공원에 빨랫줄을 쳐놓고 아이들의 그림을 빨래집게로 널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아이들만의 전시회는 늦은 오후에야 끝이 났다.
관람객이라곤 공원에서 운동하던 주민들과 도서관을 오가던 학생들이 전부였지만 지나는 길에 꼬마 화가들의 작은 전시회를 보며 살포시 웃어주기도 하고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기도 했다. 비록 짧은 전시회였지만 아이들도 엄마들도 이날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꼬마 화가들의 전시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엄마들도 꼭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