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100만명 시대,이젠 국내 기업에서도 외국인 직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주 '김과장&이대리'는 한국 기업에서 좌충우돌하며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는 '킴과장&리대리'들의 삶을 들여다 봤다.
◆"고향 가면 오히려 낯설어요"
"폭탄주도 좋지만 그래도 50세주가 최고죠." IBM코리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실반 달라산타 실장.프랑스인인 그는 10년 전 여행을 왔다가 한국의 매력에 빠져 한국 지사 근무를 신청했고,8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은 스테이크보다 곰장어와 곱창집을 더 좋아하고,샹송보다는 보컬그룹 '토이'의 '내가 너의 곁에 살았다는 걸'을 더 즐겨 부른다.
그는 한국 회사를 '확실하게 일하고 확실하게 노는 곳'으로 규정한다. 에너지를 모두 쏟아낼듯 일하던 직장 동료들이 퇴근 후 술자리나 노래방에서 또 다른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W정밀의 와이즈 헤리트 과장은 이스라엘 태생으로 6년 전 한국에 파견왔다. 처음에는 부장님,과장님 등 호칭을 꼬박꼬박 불러야 하고,같은 직급이라도 입사 시기가 빠른 사람에게 선배 대접을 하는 걸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위계질서가 강하고 경직된 문화에 답답함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특유의 협업문화와 업무 속도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한번은 팀원 한 명이 큰 실수를 저질렀는데 부장이 모든 책임을 지는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조직 속에 배어 있는 가족과 같은 끈끈함이 너무 좋아요. " 그는 이제는 오히려 이스라엘에 출장을 갈 때마다 문화적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그는 한국 여성과 결혼하고,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펼치고 있다.
대신증권의 윌리엄스 씨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직장동료 상갓집에 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사진에 대고 절을 하는 것도 의아했지만,직장동료들이 고인을 모신 곳에서 웃고 술 마시며 밤을 새우는게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 특유의 장례문화가 피부에 와닿는단다. 윌리엄스 씨는 "한국 직장사회가 갖는 특유의 정 문화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서양의 직장인들에게서 느껴지는 벽을 전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부장님 오늘 맛있어요"
킴과장과 리대리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충은 역시 커뮤니케이션이다. K엔지니어링에 다니는 A과장은 직원들과 수다를 떨다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얘기를 하다 보니 부장의 얼굴이 점점 빨개졌다. 1분 정도 지난 후에야 자기가 부장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캐나다에서 한국에 온 지 5년이 됐지만 아직도 반말,존댓말이 헷갈린다. 지난달에는 부장의 산뜻한 넥타이를 보고 "부장님 오늘 맛있어요"라고 말해 부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멋있어요'였다.
금속업체 L사에 다니는 캐나다인 B씨는 직장 동료의 번역 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당시 이 회사는 SAP 프로그램을 용도별로 매뉴얼을 작성해 사용하고 있었다. 한글버전을 사용할 줄 모르는 그가 전표 작성에 애를 먹고 있자,한 '친절한' 동료가 매뉴얼을 일일이 영어로 번역해주는 과정에서 차변은 'CREDIT',대변은 'DEBIT'식으로 정반대로 바꿔 놨다. 그는 지금도 전표를 반대로 끊은 자신이 영문도 모르고 시스템 담당자에게 항의했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빨개진다고 한다.
◆"한국 직장인은 슈퍼맨"
"한국 직장인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머신들 같습니다. " 김과장&이대리팀이 인터뷰한 외국 직장인들의 한결 같은 반응이다. 한 증권사의 영국인 직원은 "살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W정밀의 헤 리트 과장도 "한번은 퇴근하면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고 농담하는 직원을 봤는데 지내다 보니 이게 농담이 아니더라"며 "일에 대한 열정 하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반면 한국의 엄격한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호텔에서 근무하는 러시아인 C씨는 상급자보다 일찍 출근해야 하는 문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출근시간보다 5~10분 정도 늦는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정시 출근은 고사하고 15~20분을 일찍 출근하라는 게 아닌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는 한 동료로부터 "부장이 10분 전에 출근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자기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됐다.
한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인도인 직원은 '표정관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볼 때마다 '한국인이 다 됐구나'하고 느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일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안 바빠도 바쁜 척 표정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은 저도 그 노하우가 쌓였습니다. 퇴근시간이 돼도 퇴근 전에 상사가 남아 있으면 눈치 보면서 일하는 척 하게 되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