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아이

조회 7047 | 2014-05-18 06:15
http://www.momtoday.co.kr/board/27265

이별보다 중요한 건 아이 마음 읽기

아이가 특정 물건에 집착하면 부모는 혹시 애정 결핍은 아닌지 걱정된다. 아이가 유난히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럴 땐 ‘억지로 떼어놓아야 한다’ ‘기다려주어야 한다’ 의견도 분분하다. 이제는 아이가 집착하는 물건과 헤어져야 할 때. 부모가 먼저 아이 마음 읽기를 해보자.

네 살배기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정현 씨는 아이와 외출하는 게 두렵다고 호소한다. 아이와 입씨름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려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두고 가자!” “아니야. 가져갈 거야.” “베개를 어떻게 가져가니? 밖에 가지고 가면 더러워지고 베개도 싫어해.” 처음엔 좋은 말로 달래다가도 나중엔 집에 두고 혼자 나가겠다며 협박에 화까지 내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러다 울고 떼쓰기 시작하면 수습하기 더 어려워질 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 땐 난감한 것투성이. 자가용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그나마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가용에서 내릴 때면 또다시 입씨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주변의 안 좋은 시선이 내내 신경 쓰여 서둘러 집으로 돌아올 게 뻔하다.
어딜 가나 끌어안고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아이 베개로 인해 딸아이와 외출을 포기한 적이 여러 번 있다는 이정현 씨의 고민이 비단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특정 물건에 집착하는 모습은 그 시기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행동으로 많은 부모의 고민거리 중 하나. 일반적으로 부모는 유독 한 물건에 집착하는 아이의 행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억지로 떼어놓거나 혼을 내는 실수를 한다. 하지만 원인도 모른 채 아이의 불편한 요구를 다 들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각하면 생활에 지장을 주는 아이의 집착 행동, 부모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부모와의 분리, 독립해가는 과정
어린아이들은 손가락을 빤다거나 엄마 가슴을 만진다거나, 주로 신체를 가지고 놀다가 3~4세쯤 되면 애착 대상이 물건으로 간다. 물건 중에서도 이불이나 베개, 손수건, 칫솔, 장난감 등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집착 행동을 보이는데, 대부분 만 5세 전후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목동 행복한 아동청소년 심리치료센터 이미영 소장은 아이의 집착 행동에 대해 정상적인 발달 과정상 흔히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부모와 분리되어 독립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한 감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특정 물건을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며 곁에 두려 하는 것이라고.
“아이가 어느 정도 혼자서 활동할 수 있게 되면 부모와 분리되어야 하는데, 이때 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더 불안해하고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아이들도 같은 이유에서예요. 쉽게 말해 아이는 나와 환경 사이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끼워놓고 언제나 나와 같이 가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이러한 행동은 더 이상 집착하는 대상이 없어도 잘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즉 아이가 환경에 적응해서 부모와의 건강한 분리가 이뤄지면 저절로 나아집니다.”

집착 행동, 애정 결핍 때문일까?
“한시라도 떨어지려 하지 않아 어린이집에 갈 때도 가방에 꼭 넣어서 가지고 가요.”
“아예 만지지도 못하게 해서 만지려고 하면 폭력적으로 변합니다.”
“잠을 잘 때도 꼭 껴안고 자서 잠잘 때 자세가 좋지 않아요.”
“오랫동안 세탁을 못하게 해서 세균 감염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에요.”
“손에 쥐지 않으면 밥도 안 먹으려고 해요.”
“크다고 못 가져가게 하면 종이라도 쥐어야 밖에 나가요.”
어떤 부모는 위와 같은 아이의 집착 행동이 애정 결핍 때문은 아닌지, 부모 자신을 탓하고 아이가 하는 행동을 무조건 허용한다. 물론 애정 결핍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한다거나 환경이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는 아이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감정을 해결하지 못하고, 늘 곁에 둘 수 있는 물건에 의지할 수 있다.
이미영 소장은 “온전히 애정 결핍 문제로만 보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손가락을 빨거나 물건에 집착하는 아이가 애정이 넘치는 경우도 많아요.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들, 아이의 성향이 그런 경우,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 과보호와 과잉 간섭 등이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런 아이들이 집착 행동을 보이기 쉬워요. 죄책감 때문에 부모의 무조건적인 허용은 어떤 육아 문제에서도 위험합니다. ‘안고 있는 건 좋은데 물고 빠는 건 안 돼’처럼 아이와 적당히 조율하는 것이 필요해요. 계속 나아지지 않거나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심각하면 상담 치료를 받기 바랍니다”라고 당부한다.
어딜 가더라도 혼자서는 무서워서 가지 못하고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으면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지나치게 의존적인 아이는 강박장애나 분리불안장애, 대인기피증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냥 두면 나아지겠지 하고 보고만 있다가 집착 행동이 더 심해지면 독립적으로 살아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도 원만한 사회생활과 대인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강제로 못하게 하면 역효과
이미영 소장은 “어느 날 갑자기 안 하던 집착을 보인다거나 집착 강도가 세져서 모든 에너지를 그 대상에만 쏟는다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의 행동이 정상적인 생활을 어렵게 하고, 매번 엄마․아빠와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면 더 늦기 전에 집착 대상과 이별하는 것이 좋겠죠? 아이의 성향과 부모의 양육 태도를 점검하고, 아이가 불안해할 만한 요소들을 제대로 파악하여 제거해야 합니다”라고 충고한다.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아이와 집착 대상을 강제로 떼어놓으려 하면 손톱 물어뜯기 같은 다른 안 좋은 버릇으로 옮겨가므로 역효과를 가져온다. 아이는 집착 대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므로 부모의 과격한 행동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보다는 집착을 왜할까 근본적인 원인부터 살피는 게 중요하다. 부모가 우선적으로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말투와 행동부터 고치고,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는 방안을 다양하게 시도하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아이의 행동이 나아지지 않으면 아이와 함께 상담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현명하다. 부모라고 다 참고 견딜 수도 없는 일. 부모가 감정 조절을 못하고 흥분한 상태에서 아이를 설득하거나 훈계하면 아이는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이 커져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

부모가 특히 조심해야 할 때
아이들이 유난히 불안해하는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긴장하거나 혼란스러워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 등. 부모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지는 말이지만 순진한 아이에겐 위협이 되고, 상실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불안감을 조장하는 말들은 아이를 긴장하게 만들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_ 내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길까봐, 나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철수될까봐 아이는 불안해한다. 이럴 땐 동생에게만 신경 쓰지 말고, 아이에게도 스킨십과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하는 등 애정 표현을 많이 한다.
아이의 나쁜 행동을 혼낼 때_ “저리 가! 미워졌어!” “고아원에 갖다 준다!” “누굴 닮아서 이러니” 같은 말을 하면 아이는 이 행동으로 인해 부모가 자기를 싫어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훈육할 땐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지 말고, 행동에 초점을 맞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관성 있게 훈육한다.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네 행동이 잘못이야.”
유치원․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할 때_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다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새로운 사람들과 생활하는 시기는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자기 위주로 되지 않는 것,  또래와 관계 맺기에 따르는 스트레스, 일정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등이 아이를 압박한다. “유치원 생활이 힘드니? ○○이 안 되어서 속상하니?” 아이가 최대한 할 수 있는 자기 보호가 물건 집착이라고 생각하고 아이의 힘든 마음으로 위로해준다.
보상할 때_ “밥을 먹으면 한 번 만지게 해줄게.” “(빼앗고) 이빨 닦으면 다시 줄 거야.” 집착 대상을 보상에 이용하면 절대 안 된다. 아이는 보상받기 위해 원하는 행동을 하겠지만, 이것을 해야만 집착 대상과 함께할 수 있다는 마음에 조급해지고 언제 다시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중된다.
아이의 집착 행동을 평가할 때_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저런다!” “그런 건 동생이나 줘버려!” 아이가 있는 데서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흉보는 행동, 비교하는 말투는 아이를 위축되게 해서 가만히 곁에서 지켜주는 집착 대상에 더 의지하게 만든다. “○○가 아니어도 친구들이 도와줄 거야.” 아이를 안심시키는 말을 하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놀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물건이 사라진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다
물건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아이가 집착 행동을 멈출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올 때까지 찾고 돌아다니다 끝내 보이지 않으면 포기는 하겠지만, 금세 다른 물건으로 대체할 것이다. 이미영 소장은 아이 스스로 집착 대상이 없어도 혼자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고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이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많이 하면 좋다. 또래 친구들과 자연에서 자유롭게 놀이하는 것도 한 방법.
“새로운 곳에서 친구들과 놀이 학습을 한다거나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지켜야 할 규칙 등을 체험하면 도움이 됩니다. 이곳에 갈 땐 내 물건을 가져가면 안 된다든지 하는 것들을 배우는 거죠. 또 부모가 집착 대상에 관심을 갖고 좋아해주면 아이는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을 부모도 좋아한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물건은 지저분해서 안 돼’라고 말한다면 아이는 ‘내가 좋아하는 건 다 지저분해?’ 하고 혼란스러워할 수 있어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에게 부모가 옆에 없어도 부모는 늘 자신을 지켜주고 사랑해준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되도록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포옹과 뽀뽀 같은 애정 표현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 아이는 더 빠르게 집착하는 대상과 이별할 수 있다.

그 외 집착 행동, 궁금한 아이 마음
- 좁은 공간
간혹 아이가 미끄럼틀 밑이나 옷장 속에 들어가서 안 나올 때가 있다. 아이의 이런 행동은 힘들 때, 화가 날 때, 불안할 때, 우울할 때 주로 나타난다. 아이들은 행동반경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눈에 다 보이면 안정감을 느낀다. 예민하고 소심한 아이일수록 기질적으로 좁은 공간을 좋아하고, 산만한 아이들은 싫어한다.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 들어가는 이유는 상처받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위안을 받기 위해서라고 보면 된다. 이럴 땐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괜찮다고 토닥여주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 과잉 간섭은 불필요하다.
- “미안해” “사랑해”
엄마가 화를 내고 자기를 미워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미안해” “잘못했어요” 같은 말로 사건을 종료한 경우, 동생을 때리거나 친구와 싸웠을 때 부모가 혼내면서 화해를 위해 상대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요한 경우. 아이는 “미안해”란 말을 들어야 비로소 눈치 보고 긴장했던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 말을 안 하면 자신을 혼내는 엄마의 행동이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불안한 것이다. 또 자기 잘못이 아닌데 잘못했다고 했을 때, 억울한 마음을 풀기 위해 “미안해”란 사과를 받아내려고 집착을 한다. 이처럼 아이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을 잃을까봐 불안한 마음에 특정 언어에 집착하므로 부모가 아이를 불안하게 만드는 행동을 조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전.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