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다.
그러나 유사 이래 우주의 비밀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소수의 성자를 제외하고는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 문제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듯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평생 겪는 과정이 인생이지만 아무리 유명한 석학이라도 인생이 뭐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만큼 인생이란 단어에는 우주를 관통하는 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방황하지 않고 올바로 살기 위해서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생의 뜻을 모르면 삶의 행위와 결과가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이 어두운 이유는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인생의 의미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인생을 알면 삶의 의미와 방향을 알게 되고 혼돈에서 벗어나 운명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인생이란 사람이 나서 경험하게 되는 한 생애를 말한다.
이러한 생애 동안 우리는 삶이라고 하는 여정을 겪는다.
따라서 사람이 인생을 모른다는 것은 삶을 살 줄 모른다는 말과 같다.
삶을 모르므로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이생에서 행한 일들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이다.
삶은 자기를 짓는 과정으로써 온갖 일을 자기 속에 일어나게 한다.
따라서 삶 속에 있는 일을 통하여 우리는 끝없는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신이 바라는 최고의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불행한 자신을 보기도 한다.
인생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상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은 어두운 현실을 보고 세상이 온통 혼돈과 무질서이며 인생은 던져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류의 빛이 된 성자들은 이 세상은 신성한 뜻에 의해 나타난 완전한 조화체이며 인간은 신성으로부터 나타나 완성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고귀한 존재라 했다.
이러한 완전한 조화 속에 우주의 모든 것이 끝없이 순환하면서 자신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은대로 받는 완전한 이치가 세상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은 생명의 완성에 이르러 신성과 하나되신 성자들이 이미 이천년 전에 지혜의 눈으로 분명히 밝힌 사실이지만, 지금은 진리가 흐려지고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져 이것을 느끼는 자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며 세상을 바로 보는 지혜의 기초가 된다.
세상이 원인과 결과를 주고받으며 끝없이 순환하는 과정은 조물주가 만든 가장 완벽한 존재방식이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존재는 예외 없이 순환의 과정을 통하여 쇠한 기운을 보충하고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인간의 영혼도 여기서 예외일 수가 없다.
인간의 영혼도 한 생을 마치고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후생의 씨앗이 되어 끝없이 자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끝없이 계속되는 순환 속에서 모든 생명은 자기가 지은 바를 자신의 영혼 속에 담고 새로운 자기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세상은 각자가 지은 것을 자신 속에 담고 끝없이 자신을 변화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운명과 성품이 다 다른 이유도 각기 다른 삶을 산 결과를 자신의 영혼 속에 담아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음식을 통해서, 그 기운을 섭취하여 성장하지만, 사람의 의식은 자기가 지은 일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의식이 변화하는 현상을 살펴보면 각자 보고, 듣고, 겪었던 일이 그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것이 쌓여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둡고 잘못된 것이 들어가면 그만큼 잘못된 의식의 근원이 만들어지고, 밝고 좋은 것이 들어가면 그만큼 맑고 좋은 의식의 근원이 만들어져 미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의 이치는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도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리라”(마태복음 12장 35절)라고 분명히 인과에 관한 이치를 적어놓고 있다.
우리가 삶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며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미래와 후생이 인생의 여정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이 힘들더라도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되며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한 순간 살기 어렵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그로 인해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좋은 인연을 포기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다음에 태어나면 더 허약한 의지와 기운을 가진 사람이 되어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는 데까지 살면서 어떻게든 좋은 원인을 짓고 더 나은 나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신을 버리는 일은 인생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타난 어리석음의 극치라 할 것이다.
인생의 도는 바로 이처럼 더 나은 나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법이다.
따라서 인생의 도를 안다면 삶의 의미를 알고 모든 혼란에서 해방되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삶에서 인생의 뜻과 이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아무리 학력이 없더라도 인생을 알게되면 그 사람은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아무리 학력이 높더라도 인생의 뜻과 길을 모른다면 그 지식은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데 사용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며 우리가 지은 모든 일이 세상의 원인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조물주가 우주의 주체이듯 그 분신인 인간도 자율성과 창조성을 가지고 세상의 주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는 살아있는 생명주체가 짓는 원인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어떠한 인생을 만들 것인지도 각자에게 달려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진실을 망각하고 자신은 노력하지 않고 신에게 의지하여 요행수를 바란다.
그러나 하늘은 자신이 지은 완전한 법칙에 따라 세상 일을 처리하는 것이지, 그것을 바꾸어가면서까지 인간을 편들지 않는다.
만약 인간의 욕망에 따라 인류역사를 좌우하는 신이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어둡고 불행한 세상이 오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세상이 이토록 어둡고 불행한 것은 완벽한 질서에 의해 사람들이 그동안 함부로 지은 나쁜 악의 결과를 스스로 받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신은 완전한 자유와 인과의 법칙을 제시해놓고 자기가 지은 대로 결과를 받는 완전한 세상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행동에 따른 불행, 축복과 저주의 체험을 통하여 인간이 가야할 길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운명은 인간 스스로가 짓는 것이며 결코 하늘이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주여, 주여! 하면 나를 찾지 말고 신의 뜻을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구세주는 바로 자기 자신인 것이며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 천국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의 영혼을 맑고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신을 섬긴다고 해서 탁한 자를 천국으로 떠밀어 넣어 줄만큼 신이 어리석은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인생을 왜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은 신성하고 완전한 법칙 속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생명의 과정을 통해 세상을 축복하고 자기를 완성시키는 길이다.
사람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성품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삶의 이치에 대해 제대로 알게되면, 결코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하자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모두 자기 속에 남으며, 잘못된 원인은 자신의 미래를 불행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치를 이해하게 되면 다시는 어둠을 범하지 않을 것이며 한순간이라도 자신을 방치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서구문명의 빛이었던 소크라테스는 ‘바로 아는 것이 덕’이라고 했으며, 부처는 ‘모든 어둠의 근원은 무명(바로 알지 못함)’이리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삶의 실체에 대해서 바른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며 세상의 문제를 푸는 핵심이다.
이 세상은 완전한 질서로 짜여진 법계이며 세상과 나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거기에는 우리의 삶과 세상을 관장하는 영원불변하고 완전한 인과의 법칙이 자리잡고 있어서, 바르고 좋은 뜻은 인간완성과 지상천국을 가져다주고, 그르고 나쁜 뜻은 인간을 불행하게 하며 세상을 파멸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완전한 우주의 법칙을 두려워하고 양심에 어긋남 없이 세상에 좋은 뜻을 지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 세상에서, 좋은 원인은 좋은 환경을 만들고 좋은 환경은 그 속에 있는 모든 존재를 좋게 만들며, 또다시 좋아진 사람은 그 주위에 있는 환경을 더 좋게 만드는 선순환을 계속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자가 이런 우주의 철칙을 무시하고 짧은 욕심에 나쁜 일로 재물을 모았다면 그 재물은 한과 원망과 시비와 갈등을 불러와 세상을 어둡게 만들 것이며 자신 속에 어둠과 욕망을 두텁게 하여 자신의 미래와 후생을 불행하게 한다.
그러므로 악을 저지르는 것은 완전하게 세상을 지키는 진리를 알지 못한 채 짧은 안목에서 일시적인 욕망에 굴복하여 자신과 주변을 모두 망치는 어리석은 짓인 것이다.
사람이 인생의 뜻을 알면 삶을 다 아는 것이며 사는 방법까지 알면 모두 다 이룬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 경우 진리 속에서 진리와 하나 되어 흔들림 없는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인생의 의미를 바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그 속에 자신과 세상을 축복하는 사랑과 완성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타고난 근본을 밝혀 바른 이치에 따라 세상을 축복하면 그 마음이 맑아지고 진기가 쌓여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인간완성의 경지인 깨달음이란 인간의 마음속에 내제된 업을 모두 지워버리고 완전히 순수한 신성을 이룬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생의 목표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삶으로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청소해야 한다.
왜냐하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이 마음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닦는 수행이란 현실의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삶의 시련을 극복하고 진리를 실현하며 업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은 맑고 완전한 마음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서 진리를 배우고 사랑을 행하여 세상을 축복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공부는 진리이고 가장 큰 보물은 사랑이다.
따라서 진리를 배우기 전이나 배우고 난 후나 해야 할 일은 사랑 밖에 없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거나 구원을 얻는다는 명목으로 세상을 등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들은 세상을 사랑하고 축복하기 위하여 진리를 배우고 인생을 깨달아 나가는 것이기에, 도를 얻거나 구원을 위하여 세상과 인연을 끊고 떠나는 일은 외도에 불과하다.
바른 이치와 밝은 마음을 지니고 세상을 축복하기 위하여 살아 나갈 때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 나타나며 신성과 합일하는 생명의 신비가 이루어진다.
*출처 = www.ginc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