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미술교육은 ‘감각 있는 어른’으로 키우기 위한 기초 과정 |
조기교육에 열성적이셨던 엄마의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미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목표대로 예중·예고를 거쳐 미대에 입학했고,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예정된 코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미술이 지겹다거나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리기만큼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었는데, ‘만약 어릴 때부터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화가나 교수, 큐레이터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했다. 이런 내가 ‘조기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은 건 대학원을 마치고 두 아이를 데리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다. 영국은 박물관과 미술관에도 키즈 아트 커리큘럼이 체계화되어 있었고, 심지어 로드숍에도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으며, 키즈 카페들 대부분이 아트 카페를 표방할 만큼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럽고 체계적으로 이른 나이부터 미술 공부를 열심히 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런 모든 교육이 화가나 예술 관련 직업인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이 되어 자신의 일을 찾았을 때 어떤 분야에서든 ‘감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훈련이라는 거다. 어릴 적 쌓은 미술적 소양은 굳이 문화예술 계통이 아니라도 필요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부모님들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우리 아이가 소질은 있나요?”, “다른 아이들은 색을 많이 쓰는데 왜 우리 아이는 한 색만 고집할까요?” 등이다. 실제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어떤 아이는 무얼 그려도 좌우 대칭까지 따져가며 완벽하게 그리는가 하면 어른 같은 배짱으로 과감하게 그리는 아이도 있다. 그리는 것보다는 명화 감상이나 미술사 수업에 눈을 반짝거리는 아이가 있고, 커다란 조형물을 전개도까지 그리면서 해치우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아이마다 미술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도 성향이 다르다. 어릴적 미술 공부를 통해 배운 지식이나 감성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는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미술 공부가 학습이 아닌 감각을 키우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
기초는 드로잉이다 미술교육의 시작은 ‘보는 연습’에서 시작한다. 그다음이 도구를 가지고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다. 특히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4세 이하의 아이들에겐 ‘그리기’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행동이다. 소근육이 덜 발달한 탓에 형태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것도 ‘낙서기’라고 부르는 엄연한 드로잉의 한 단계다. 드로잉은 미술교육에서 기초가 되는 훈련으로 미술뿐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도 필요한 작업이다. 조각가도 수백·수천 장의 아이디어 스케치와 드로잉에서 작품을 시작하며, 패션 디자이너도 스케치부터 시작한다. 심지어 위치를 설명할 때도 지도를 그리지 않나. 드로잉이 중요한 만큼 외국의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드로잉을 습관화 시키는데, 이 때문에 외국의 미술관이나 공원에 가보면 바닥에 엎드리거나 앉아서 조각이나 그림 등을 열심히 그리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들에게 가장 말리고 싶은 것이 아이들에게 ‘색칠 공부’ 책을 사주는 것이다. 고사리같이 작은 손에 굵고 뭉툭한 재료를 가지고 빈틈없이 ‘메우는’ 작업은 사실 어른들에게도 까다롭고 힘든 일이라 아이들이 미술을 어렵고 힘든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색깔을 칠하는 테크닉을 습득할 수는 있겠지만,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유아기에는 색깔 공부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드로잉 작업이 더 중요하다. |
드로잉 연습엔 플러스펜 드로잉을 하기에 좋은 도구는 아이들의 힘으로도 쉽게 그어지는 것들이다. 자기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것을 주어야 싫증 내지 않고 아무것이나 그리기 시작한다. 이런 재료로는 힘 조절에 따라 농담이 달라지는 붓펜과 연필이 좋다. 붓펜은 부드러우면서도 끝의 브러시를 이용하여 그럴듯한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새로운 촉감의 표현에 아이들도 매우 흥미로워한다. 연필 역시 드로잉에 흔히 사용하는 도구지만 아이들이 지우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작업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추천한다. 사실 우리 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재료는 바로 플러스펜(수성펜)이다. 플러스펜은 흔히 구할 수 있고 가지고 다니기도 쉬우며 아주 부드럽게 그어지기 때문이다. 끝이 뭉툭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형태를 세밀하게 표현하기에도 좋다. 또한 드로잉 후에 얇은 붓과 물만 있으면 수채화 같은 표현이 가능하다. 펜으로 그림을 그린 다음 붓에 물을 묻혀 그린 선을 따라 그대로 긋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번져 마치 색을 칠한 듯한 효과를 주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할 때 드로잉에 대한 스킬이 충분히 몸에 배어 있지 않다면 제대로 표현해내기 힘들다. 드가의 그림 속 생동감 있게 발레하는 모습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인체 드로잉을 연습한 흔적을 볼 수 있듯이 드로잉 실력을 향상시키려면 많이 그려보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작은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든 마음껏 그리게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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