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이를 만들려면 먼저 다정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

조회 2817 | 2010-08-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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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정한 사람이 좋다. 그래서 내가 다정한 엄마가 되려 했다. 언제나 아이를 향해 두 팔 벌리고 맞아 주는 엄마. 엄마를 보면, 엄마 목소리만 들어도, 아니 엄마 생각만으로도 아이의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가 되려 했다.
  나는 아이가 아이로서의 권리를 최대한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었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다. 언제나 편안한 집, 뭐든지 다 해소되는 곳. 아기일 때는 아기의 일인 대소변을 잘 본 것을 칭찬하며 그 뒤처리를 즐겨 했다. 어지르며 노는 것 역시 아이들의 특권이다. 아이들이어서 일어나고 벌어지는 일을 백번 이해하여 아이가 어떤 일도 머뭇거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 노력했다.
  아기가 기저귀를 차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오줌을 누게 되어도 아기가 놀라지 않고 시원하게 일을 다 보도록 조용히 기다렸다. 엄마가 그때 깜짝 놀라면 아이의 배설 능력이 위축된다. 급작스러워도 담담히 기다려야 한다. 그냥 다 누고 나서 닦으면 되는 단순한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길렀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무슨 일이 벌어져도 좀처럼 놀라거나 야단스럽게 굴지 않았다.
 아이가 일상을 마치고 집에 오면 환한 얼굴로 맞이했다. 사감처럼 이건 이래, 저건 저래 따지지 않고 그냥 아이 입장에서 한껏 기운을 내게 해 주는 엄마이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가 모든 하소연을 내게 다 하고는 응어리가 풀어져 함박웃음 짓기를 원했다.
  내 아이가 다른 이에게 대접받았으면 하는 만큼 아이를 대접해 주었다.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남에게 홀대 당하면 가슴 아파한다. 그처럼 ‘남이 내 아이를 이렇게 대하면 화가 나겠지’ 하는 행동은 나부터 하지 않았다. 또한 내 앞에서만큼은 내 아이가 최고의 대접을 받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 아이를 왕자님, 공주님 모시듯 존대해 주고 행복에 눈 뜨게 하고 어떤 요구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아이들은 뭐든 다 받아 내는 따뜻한 엄마의 품에서 걱정 없이 자란다.
  그러니 뭐든 말할 수 있게 하고 원하는 것은 다 하게 해 주자. 그건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아이가 엎드려서 걸레질을 하는 엄마 등에 올라타며 “야, 말이다! 말 타자!” 하면 “히힝” 하며 장단을 맞추고 더그덕 더그덕 입으로 소리를 내며 열심히 달리면 된다. 때론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아이들을 조심스레 떨어뜨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좋아서 숨이 넘어갈 듯 웃고, 나는 아이들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방바닥을 엉금엉금 기며 걸레질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말을 연상한 아이에게 “저리 비켜. 귀찮아” 또는 “이것 빨리 해야 해”라기보다는 아이와 친구가 되어 잠시 말 흉내를 내며 같이 놀아 주자. 말 한 마리 없는 좁은 집 안에서도 상상력 하나로 아이에게 최상의 풍요를 누리게 해 줄 수 있다.  
 길에서 마주치는 엄마들 중에는 아이들에게 “안 돼, 하지 마”를 남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뭘 하다가 깜짝 놀란다. 아이들도 사람이니 보는 게 있고, 궁금한 게 있고, 작은 머리지만 생각이 있으니 하고 싶은 것도 있을 게다. 그런데 어른의 생각으로 위험하고, 더럽고, 보기 싫으니 안 된다고 한다. 혹은 옷 버릴까 봐 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는 아이의 오감을 발달시키는 놀이를 모두 차단하는 것이다.
  아이가 떼를 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원인만 찾아내 잘 해결해 주면 된다. 사실 아이를 제지하는 엄마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위급한 상황이 오면 분명 제 목숨을 내놓고 아이를 구할 것이다. 그 사랑을 일상적으로 보여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이론상으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이를 기르면서 여유 있게 대처하지 못할 때가 있다. 서둘러서 그렇다.
  ‘아이가 왜 이것도 못하나’
  아이니까 못한다. 아이가 어른처럼 잘한다면 큰일 나지 않겠는가. 아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 아이의 행동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니까 가르치는 재미도 있지 않은가. 그래야 훗날 아이에게 할 말도 생긴다. 내가 너를 이렇게 길렀다고.
  짜증이 날 때는 늘 ‘아, 아이니까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아이다움을 인정하면 짜증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가 계속 짜증을 내면 ‘우리 딸 예쁜 얼굴은 어디 갔나?’, ‘착한 우리 아들 왜 화가 났을까’ 하며 엄마부터 마음을 가라앉히는 질문을 아이에게 던진다. 그러면 엄마도 아이도 화가 한풀 꺾여 마음이 고요해진다.
  또 뭐든 들여다보고 만지고자 하는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그러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는 징조다. 아마 자라서 공부 잘할 것이다. 몸이 더러워지면 나중에 깨끗이 닦아 주면 된다. ‘아, 얘가 총명해서 그렇구나’라고 생각하는데 짜증이 나겠는가. 아니다. 그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엄마가 어른다워지면 아이는 제자리를 찾는다. 남 해코지하지 않는 한 아이가 즐기고자 하는 일, 다 누리게 하자. 그건 아이의 특권이다. 그런 특권을 누리는 아이가 사는 집에는 기쁨이 가득하다.



엄마학교 저자 서형숙 blog.naver.com/u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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