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흙과 친해지다
흙은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놀이터가 돼주었다. 하지만 회색빛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인 요즘 도심에선 흙 한번 밟기가 어렵다. 그래서일까. 거기서 자라는 아이들의 감성도 점점 메마르고 딱딱해져가는 것 같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을 만지고 놀면 어떨까. 잃어버린 감성을 되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흙에서 나서 흙에서 자란 것을 먹고 다시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 이처럼 생명의 순환이 무한 반복되는 대지는 무엇이든 품어 안고, 쉼을 주며, 새 생명을 움트게 한다. 마치 엄마 품속처럼 따스하게 느껴져서일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흙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요즘 도시는 온통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다. 동네 놀이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안전이나 관리의 편리성을 이유로 바닥을 우레탄으로 처리한 곳이 많아져 흙 구경이 쉽지 않다. 또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길들여진 요즘 아이들에게 흙은 더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탁 트인 자연 대신 사각의 시멘트 공간에서 TV나 컴퓨터 등에 빠져 사는 우리 아이들의 감성이 점점 메말라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유년 시절 흙을 접한 기회가 많았던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흙과 친해지면, 풍부한 감성을 지닌 아이로 자랄 수 있다.
아이가 흙을 만지고 놀아야 하는 이유
흙이 없어진 세상이라지만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아이가 흙과 친해지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근처 숲이나 공원에 들러 흙을 밟게 해도 좋고, 집 안에 식물을 키워 흙의 기운을 맡게 해도 좋다. 또 흙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 등을 할 수도 있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흙을 이용한 놀이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운다 |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흙을 손으로 주무르다 보면 자연스레 신체의 모든 감각이 자극을 받는다. 특히 섬세한 부분을 만들 때 손가락을 활발하게 움직이게 되는데, 이로써 손 근육과 함께 두뇌가 발달된다.
스트레스가 발산된다 | 촉촉하고 말랑말랑하며 주무르는 대로 모양이 만들어지는 흙의 가소성은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게 도와준다. 흙을 가지고 놀면서 분노나 스트레스 등 정서적으로 억압돼 있던 감정을 마음껏 풀 수 있는 것.
자신감을 갖게 된다 | 스스로 생각하고 만들면서 즐거움을 경험한다. 처음에는 만들고자 하는 대상을 서투르게 표현하지만 점차 정확하고 섬세하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는다.
비례와 균형 감각이 생긴다 | 사물을 유심히 관찰함으로써 비례 감각이나 균형에 대한 판단력이 높아지고, 공간 개념도 익힌다.
사회성이 발달한다 | 흙놀이는 혼자뿐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면서 협동심을 기를 수 있다.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태도를 배움으로써 사회성이 발달한다.
면역력을 길러준다 | 흙을 만지면 자연스럽게 약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된다. 이 정도는 누구나 이겨낼 수 있는 면역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오히려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에서 자라면 면역력이 약해져 알레르기질환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 최근에는 아토피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흙놀이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흙의 성분이 치료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흙놀이에 몰두하는 동안 가려움을 잊을 수 있다.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 얼마 전 영국 BBC 방송에서 흙 속 미생물이 우울증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이 미생물이 면역체계에 자극을 가해 뇌 속에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더 많이 분비시킨다는 것. 오감발달교육연구소 김연숙 소장은 흙놀이가 주는 효과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자연의 감성을 직접 손으로 체험함으로써 갖게 되는 정서적 안정감이라고 설명한다. “소재 자체가 만물의 근본 요소인 흙이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매우 친근하게 느껴지죠. 요즘처럼 자연을 쉽게 접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흙이 주는 신선함은 다른 장난감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별함을 선사합니다.”
아이가 흙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 방법
흙놀이를 하면 옷이 더러워지고,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이 옮지 않을까 걱정하는 엄마들이 더러 있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엄마에게 혼날까봐 제대로 놀지 못하곤 한다. 시골 흙길을 산책하다 보면 흙의 텁텁하면서도 매캐한 냄새가 확 올라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자오스민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이는 탄소, 수소, 산소로 이뤄진 천연 물질로 인체에 무해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따라서 엄마는 안심하고 흙놀이를 시켜도 된다. 의사들도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은 아이의 면역 시스템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흙놀이를 통해 세균과 바이러스 등에도 잘 싸울 수 있는 면역력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는 것. 흙놀이를 하면 손과 옷이 더럽혀지는 건 당연하다. 사실 아이에겐 맘껏 더럽히며 놀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흙놀이를 하기 전 아이에게 편한 옷을 입히거나 앞치마를 해주면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