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달콤함’에 열광하는 것일까. 과일 등 천연 단맛은 괜찮을까. 아이 대부분은 달콤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이로 인해 여러 질병도 야기되지만 좀처럼 끊기 힘든 게 바로 ‘단맛’이다. 우리 아이 건강을 달콤하게 갉아먹는 단맛 중독, 원인을 알아보자.
# 달콤한 것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정후(6세)와 지후(4세). 아침에 눈뜨자마자 냉장고로 달려가 요구르트를 사정없이 먹어댄다. 아침밥도 먹기 전이라 엄마는 걱정이 태산. 하지만 매번 손도 쓰기 전에 쏜살같이 진행돼 어쩔 도리가 없다고. 정후와 지후는 그렇게 배를 채운 후 아침밥은 건너뛰고 배가 고프다 싶으면 이번엔 과자를 찾는다. 정후와 지후는 하루 종일 과자, 요구르트, 초콜릿으로 배를 채우기 일쑤다.
“이런 간식을 끊기 위해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해봤어요. 과자나 음료수도 사다놓지 않았지만 둘 다 한마디로 ‘발악’을 하더군요. 밥도 안 먹고요. 저러다 뭔 일 나겠다 싶어 조금씩 사다두지만 이건 아닌데 싶어요. 그렇다고 딱히 뾰족한 수를 모르겠어요.”
# 생후 18개월 된 지은이는 밥 안에 고구마나 단호박이 있어야만 밥을 먹는다. 이유식 시기에 워낙 먹지 않아 단맛이 나는 고구마와 단호박을 갈아서 함께 먹여온 것이 원인이었다. 지은이에게 고구마와 단호박은 세끼 필수 음식 재료다. 엄마는 천연 단맛에 우리 농산물이니 괜찮을 거라고 마음 놓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영유아 검진을 받았는데 소아당뇨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지나치면 안 먹으니 못하다는 의사의 조언을 들었다.
단맛 좋아하는 아이, 이유 있다
어떤 부모가 아이에게 단것을 먹이고 싶어 할까? 어떤 부모도 아이에게 선뜻 사탕과 초콜릿을 건네지는 않는다. ‘제발 과자나 사탕 따위는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누가 가르쳐주기라도 한 것처럼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사탕’ ‘과자’에 열광한다.
이렇듯 아이들이 단맛을 좋아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단맛은 우리 몸속 세포를 살아 움직이게 해주는 에너지, 즉 포도당의 맛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처음 맛본 사탕, 초콜릿, 설탕, 아이스크림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것은 그 안에 존재하는 단맛, 즉 포도당과 관련된 화학물질 때문이다. 문제는 인공적인 단맛이 많아지고, 단맛을 인위적으로 더 강하게 조장하고 있는 식품들이다. 특히 점점 다양해지고 강해지는 단맛을 접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단맛 본능이란 마치 마약과 같은 위험한 중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기의 첫 입맛 ‘이유식’ 과정 중요해
정후와 지후, 지은이는 말 그대로 ‘단맛’ 중독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분당함소아 박미녀 영양사는 이에 대해 “첫 번째 원인은 바로 엄마”라고 말한다.
“엄마에게는 이 사실이 가혹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네 살 이전까지 아이의 입맛은 엄마가 어떻게 음식을 주느냐에 달려 있어요. 아이의 잘못된 식습관은 대부분 부모의 양육 방식에서 비롯되죠. 임신이나 모유 수유 기간 중의 음식 섭취 습관, 이유식 진행 형태, 부모가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사 분위기 등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아이의 식습관에 그대로 영향을 주죠. 아이가 단것만 찾는다면 부모가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사실 모든 아이가 단맛을 좋아한다. 당으로부터 몸의 에너지를 공급받던 태아 때의 기억, 모유를 통해 유당이라는 단맛을 유일한 먹을거리로 알던 신생아 때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태어나기 전부터 단맛을 좋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단맛 중독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아이들은 단맛을 좋아하도록 태어났을 뿐 중독되도록 태어나지는 않았다. 아이 대부분이 달콤한 아이스크림, 사탕, 초콜릿 등을 좋아하지만 모든 아이가 이러한 것에 중독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기의 첫 입맛을 좌우하는 생후 4~6개월 즈음 이유식이 매우 중요해요. 이 시기는 아기가 탄수화물을 소화시킬 수 있는 소화 능력이 발달하는 때이기도 하죠. 따라서 아기가 본능적으로 단맛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강한 단맛을 처음부터 주지 않으면 단맛과 그렇지 않은 맛에 대한 뚜렷한 경계가 덜 생겨요.”
단맛, 세로토닌 분비로 기분 좋아져
“초콜릿이나 케이크, 사탕 등 단맛이 강한 음식을 먹으면 달콤한 성분들이 침에 녹아 세포막 위의 단맛 수용체에 달라붙어 뇌에 그 신호를 전달합니다. 신호를 받은 뇌는 신경을 안정시키는 신경전달물질 ‘세로토닌’을 분비시키고, 아이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죠. 이런 기분이 아이의 장기 기억에 저장되었다가 또 단맛을 찾는 것입니다. 또 단맛을 내는 음식에는 세로토닌을 만드는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의 함유량이 많아 뇌가 쉽게 세로토닌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 때문에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죠.”
하지만 단 음식 때문에 좋아진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당분이 몸 안에 들어오면 당장은 에너지 보충과 함께 기분도 나아지지만, 점점 더 많은 당을 먹어야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당분이 공급되지 않으면 짜증이나 노곤함을 견디지 못해서 배고프지 않아도 계속 먹어야 하는 ‘중독’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좋았던 기분은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단것을 먹은 뒤 행복해진 기분을 기억하는 아이 몸이 더욱더 단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 ‘설탕’으로부터 지키자
그렇다면 단맛 중독을 걱정하는 이유는 뭘까? 단맛은 대부분 설탕 덩어리의 음식이 많은데, 이런 음식들은 다른 자연식품들과 달리 영양소를 거의 함유하고 있지 않다.
“설탕은 당질 99.9%, 수분 1%로 구성돼요. 당질이 많다 보니 열량은 설탕 100g당 387㎉나 되죠. 영양소는 거의 없고 열량만 높은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너무 많이 섭취하면 고른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양 결핍이 일어날 수 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통통한 아이라도, 속은 텅텅 비어서 오히려 체력적으로 부실한 경우가 많아요.”
이런 이유로 영양학자들은 설탕을 ‘Empty Calorie Food’ 즉 ‘빈 열량 식품’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단맛이 많이 나는 음식은 비만, 당뇨병, 과잉 행동, 치아우식증 등을 야기할 수 있어 아이들이 하염없이 중독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단맛 중독으로 인한 각종 질병
면역력 저하_ 하루에 100~150g의 설탕을 먹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면역 세포인 ‘마이크로파지’가 5시간 이상 꼼짝도 않고 있음이 확인됐다. 또 토마토의 항암 작용 성분인 ‘라이코펜’도 설탕과 함께 먹으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아이들의 잦은 감기도 이런 설탕 성분의 과다 섭취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소아당뇨_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는 설탕의 ‘롤러코스터 현상’이 반복되면 췌장이 붓는다. 췌장이 제 기능을 못하면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소아당뇨로 이어진다.
소아비만_ 겉보기와 달리 심각한 영양 결핍에 시달리는 아이가 많다. 고열량, 높은 당지수의 음식을 많이 먹으면 영양은 결핍된 채 비만에 걸릴 확률이 높다.
단백질 흡수 방해_ 어린이 성장 발육에 필요한 아미노산인 ‘리신’을 파괴하므로 단백질의 영양분을 떨어뜨린다.
저혈당증_ 설탕은 소화 과정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빠르게 흡수되어 혈당을 급속히 올라가게 한다. 이때 올라간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돼 혈액 내 혈당을 세포 내에 넣어준다. 이러한 과정 중 인슐린의 과다 분비로 혈당이 급속하게 떨어지고, 이때 아이들은 불안정하며,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심지어 폭력적이 되는 등 병적으로 과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칼슘 결핍_ 우리 몸의 혈액은 항상 약알칼리성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 이때 우리 몸이 산성 쪽으로 기울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상처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런데 설탕을 먹으면 혈액은 산성 상태가 된다. 즉 아이가 사탕, 과자, 초콜릿 등 설탕이 들어 있는 식품을 먹을 때마다 우리 뼈의 칼슘도 함께 빠져나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비타민 결핍_ 설탕은 오로지 당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당이 몸속에서 분해, 흡수, 에너지화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비타민과 무기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설탕은 그러한 비타민과 무기질이 모두 제거된 상태이기 때문에 설탕의 당이 에너지로 쓰이기 위해서는 몸속에 있는 비타민과 무기질을 빼내 써야 한다.
식욕부진_ 공복 시 단맛 성분이 위 속에 들어가면 위의 수축 운동이 갑자기 약해진다. 배고플 때 단것을 먹으면 어느 정도 공복감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식욕부진과 함께 위장병의 위험도 가져온다.
치아우식증_ 음식물을 섭취하면 입안에 음식 찌꺼기가 남는데, 플라크를 이루고 있는 세균에 의해 입안에 남아 있는 설탕이나 전분 등이 분해된다. 이때 발생하는 산이 치아면의 법랑질을 공격해 손상되면 치아우식증이 발생한다. 당류가 많이 함유된 음식과 음료수, 입안에서 당류로 변할 수 있는 음식, 입안에서 쉽게 씻겨 나가지 않는 음식 등의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 특히 요구르트와 같은 유산균 발효유는 산도가 높아 충치를 쉽게 유발한다.
단맛으로 보상하지 마라
이제 중요한 것은 단맛 중독으로부터 우리 아이를 지키는 일이다. 어떤 경우라도 단맛을 보상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네 방을 정리하면 아이스크림을 줄게” “밥을 다 먹으면 간식을 먹을 수 있어” “이거 다하면 과자 줄게” 등 단맛으로 보상을 하면 아이는 너무 쉽게 단맛에 중독돼 버린다.
“어떤 보상으로 단맛을 처음 접했을 경우, 아이는 단맛을 가장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죠. 차라리 칭찬 스티커나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보상으로 삼는 게 나아요.”
나아가 아이가 지나치게 단것만 찾는다고 염려하는 부모라면 한 번쯤 부모 자신의 식습관을 되짚어보아야 한다. 아이가 아무리 단맛 본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것을 중독으로 키워갈지, 바람직하게 조절해갈지는 부모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Tip 단맛 중독을 일으키는 성분은 무엇?
단맛을 가진 모든 식품이 중독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과일은 물론이고, 밥도 꼭꼭 씹어 먹으면 단맛이 난다. 그러나 누구도 과일이나 밥에 중독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단맛은 단순당 중 이당류에 해당한다. 당류는 우리가 5대 영양소라고 꼽는 것 중 탄수화물을 말한다. 탄수화물에는 단당류, 이당류, 올리고당, 다당류가 있다. 단당류는 탄수화물의 최소 단위로 포도당, 과당 등이다. 이당류는 단당류가 둘이 모인 형태로 설탕, 맥아당, 유당 등이다. 올리고당은 단당류가 3~10개 모인 것이고, 다당류는 단당류가 10개 이상 모인 것을 말한다. 단당류와 이당류는 단순당이라고 하고, 올리고당과 다당류는 복합당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중독을 일으키고 당뇨병을 일으키는 것은 단순당 중 이당류다. 복합당에는 현미, 통밀, 보리 등 도정이 덜 된 곡물이나 채소, 콩 등이 해당된다. 단순당 중 다당류는 우리 몸속에 빠르게 흡수되어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지만, 이당류는 단당류로 분리되어 쓰이는 것뿐만 아니라 단맛이 강해 중독을 일으킨다. 복합당은 서서히 소화, 흡수되어 혈당을 급격히 올리지도, 비만을 불러오지도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단맛의 대부분은 이당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 초콜릿,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안에는 대부분 설탕보다 더 강하게 조작된 이당류들이 담겨 있다. 복합당으로는 아이들을 강력하게 끌어들일 단맛을 낼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업체도 비싸고 효과가 떨어지는 복합당을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아이들이 선호하는 단맛 식품의 대부분이 중독과 관련된 신경호르몬을 분비하는 당 성분으로 구성되고, 아이들은 점점 더 단맛에 중독되어 엄마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치열하게 단맛을 요구하는 것이다.
Tip 식품첨가물 표기 반드시 확인해야
빵에는 15%, 콜라에는 13%, 케첩에는 27%, 아이스크림에는 23~33%의 설탕이 들어 있다. 무가당 주스에는 비록 설탕은 아니지만 액상 포도당과 과당이 들어 있어 설탕과 같은 작용을 한다. 과자, 양념치킨, 소시지, 피자 등은 모두 단 음식이다. 과자(100g)에는 각설탕 8개에 해당하는 단맛이, 양념치킨(100g)에는 각설탕 11개에 해당하는 단맛이, 피자(100g)에는 각설탕 아홉 개에 해당하는 단맛이 숨어 있다. 각설탕 하나의 중량은 8g 정도 된다.
커피, 껌, 과자, 라면, 소스 등 우리가 먹는 것 대부분에 설탕은 어떠한 형태로든 들어간다. 심지어 우리가 달다고 느끼지 못하는 음식, 짭조름한 맛의 스낵, 피클류, 인스턴트식품에도 상당량의 설탕이 들어간다. 식품 포장 뒷면 재료명에 쓰여 있는 정백당, 액상 과당, 액상 포도당, 설탕 등은 모두 우리 몸에서 같은 작용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