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조회 2279 | 2014-05-29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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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부모들은 한결같이 아이가 책 읽는 아이로 커주기를 바란다. 더러는 아낌없이 투자를 하기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까닭이 뭘까? 책을 안겨주거나 읽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죽어라 하고 책 안 보는 아이와 틈만 나면 책 보는 아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유학시절, 거의 매일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그 길에 아기옷 가게며 장난감 가게가 있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 물건들이 내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온 그제서야 나는 세상에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냥 지나칠 때는 그저 평범한 사물이던 것들이 어느 날 불쑥 하나의 의미가 되어 내게 다가온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신기한 경험은 책방에서도 계속되었다. 책방에는 과거에 내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때 5개월쯤 되었던 딸아이를 염두에 두고 있던 내 눈에 띈 것은 당연히 책이랄 것도 없는 영아용 책들이었다. 책이라기보다는 책의 형태를 띤 장난감이라고 해야 옳을 그 책들.... 그 중에서 두 권을 샀던 기억이 있다. 한 권은 목욕할 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비닐 튜브와 같은 재질로 제작된 것이었고, 다른 한 권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서 촉감을 자극하도록 만든 헝겊으로 된 책이었다. 깔깔이 천, 무명, 실크, 털실, 벨벳을 비롯한 다양한 천으로 만들어 보행기 같은 데에 걸 수 있도록 책갈피 모양의 끈에 플라스틱 고리를 달아 두었던 그 책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 책들을 사다 주고, 집에 책이 많이 있고, 엄마 아빠가 책을 많이 보고.... 그런 것들이 우리 딸이 책을 많이 읽는 아이로 자라게 한 데에 공헌을 했는지 어떤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책 읽어주기에 그리 열심인 엄마는 사실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묻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많이 읽겠느냐고. 책 안 읽는 아이에게 책 읽히는 비법을 알고 있지 못한 나는 자주 곤혹스럽다. 고민을 하다가 떠오른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사람들은 왜 아이들이 책을 읽기를 그토록 바랄까' 하는 물음이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 읽기를 막연히 공부와 연관시켜서 생각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공부'나 '학교'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까? 만일 책 읽는 일이 공부와 같은 의무사항이 아니고 즐거운 놀이라면 그래도 아이들이 책 읽기를 싫어할까?

아이들은 왜 책 한권을 읽고 읽고 또 읽을까
아이들에게는 저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다. 엄마, 아빠를 조르고 졸라서 얻은 로봇이나 미니카, 인형은 단 며칠, 혹은 단 몇 시간일지언정 아이에게 완전한 행복을 선사한다. 어른들 눈에는 종종 조잡하고 쓸데없는 것으로 보이는 그 장난감들이 아이들을 그토록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장난감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장난감을 갖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 반면에 아이들이 책을 통해 얻는 기쁨은 장난감에서 얻는 기쁨과 질이 다르다. 장난감에 아이들은 쉽게 마음을 뺏기고 또 쉽게 시들해진다. 그러나 책은 경우가 다르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은 읽고 읽고 또 읽는다. 되풀이해서 읽을수록 더 좋아한다. 눈에 보이는 책은 낡을 수도 있고 없어질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내면에 자리잡은 책은 하나의 경험으로 남는다. 어린 아이들일수록 보는 책의 내용도 단순하지만 아이에게 남는 것은 책에 담긴 내용보다는 그 책에 얽힌 체험이다. 그러니까 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 그 순간만큼은 오로지 자신에게만 쏟아지던 엄마의 관심과 사랑, 그때의 분위기 등등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 것이다.

아기를 가진 엄마들은 말을 알아듣는지 마는지 모를 아기에게 하루종일 말을 한다. 기저귀를 갈거나 보채는 아기를 달래면서, 잠투정하는 아기를 다독거리면서. "어디, 우리 아기 쉬 했나 보자", "자아, 시원하지?","저런 우리 아기 배가 고파?", "세상에 누가 우리 아기를 울렸어?", "착하지? 우리 아기 뚝 하자, 응". 이런 엄마들의 말은 그 의미와는 상관없이 전부 아기에 대한 오롯한 애정의 표현이다. 아기는, 엄마 젖이나 우유와 함께 이렇게 엄마의 말을 먹고 자란다. 말의 의미를 배우기 전에 아기는 달콤한 소리로 전달되는 말을 감지한다. 말로써 아기와 엄마는 행복을 교감한다. 아기의 그런 언어 체험을 나는 선명하게 확인한 적이 있다. 둘째아이가 두 돌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식탁 의자에 엉거주춤하게 올라선 채로 나를 바라보며 참으로 엉뚱하게도 그러나 분명한 발음으로 "둥둥 내 사랑!" 하는 것이었다. 내가 깜짝 놀라 아이를 쳐다보니, 제 입에서 나온 말에 저도 놀란 듯 그러나 귀여운 짓을 해놓고 칭찬을 기다릴 때처럼 애교가 가득 넘치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유난히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였다. '둥둥 내 사랑'은 갓난아기 시절, 외할머니가 업어 기르면서 흥얼거리던 노랫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때 '사랑'도 '둥둥'도 무슨 뜻인지 모를 때였고 그런데도 그것이 아이의 머릿속에 그대로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어느날 문득 아이의 입을 통해 '둥둥 내 사랑'이라고 말이 되어 나왔으니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둥둥 내 사랑'이란 말은 아이가 그렇게 좋아했던, 그리고 일곱 살이된 오늘도 좋아하는 '어부바'였던 것이다. 그걸 깨달으면서 내가 확인한 것은 언어를 통한 아이의 행복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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