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뇌가 아름답다

조회 2396 | 2010-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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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안에 위대함의 씨앗을 품고 있다.
비록 그 씨앗이 아직 싹을 피우지 못했다 하더라도 누군가 믿어주면 그 씨앗에서 싹이 피게 마련이다.
한번 믿어줄 때마다 생명의 물과 온기 햇빛을 주는 것이다. -존 맥스웰-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처럼 독서는 ‘고독 속의 대화가 만들어내는 유익한 기적’이다.

독서는 날마다 경험과 기억, 지혜로 가득 찬 뇌를 발명한다. 조용한 방에서 아이들이 책 속의 글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들의 신경세포는 끊임없이 시냅스를 강화하고 서로 연결되고 끊으면서 지혜의 신경망을 만들어낸다. “작가의 말이 시작되는 순간 독자의 지혜가 시작될지어다”라는 미국의 심리학자 매리언 울프의 말처럼 말이다.


울프의 저서 ‘책 읽는 뇌’에 따르면 독서가 뇌에 가장 훌륭한 음식인 이유는 풍성한 자극원이기 때문이다.

글자를 이해하고 상징을 해석하는 측두엽, 상황을 파악하고 활자를 시각으로 상상하는 전두엽, 감정을 느끼고 표상하는 변연계 등 독서의 흔적이 남지 않는 뇌영역은 거의 없을 정도다.


영양가 있는 음식이 대개 그렇듯 독서가 가장 유익한 시기 또한 6세부터 20세까지의 지적 성장기다.

독서에 따로 때가 있겠냐마는, 젊은 시기에 배운 지식은 풍성한 자양분이 되어 그들의 삶을 건강하게 살찌운다.

선인의 지혜와 동시대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책 속에서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고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여섯 살 때까지 책을 금지하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인내심을 갖고 더 기다려도 좋다.

스스로 책을 찾고 책을 즐길 시기가 찾아올 때까지 그들에게 책을 금하라. 때론 읽고 싶다고 해도 맘껏 뛰어놀라고,

아직은 책을 읽을 시기가 아니라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라.

 

6세까진 책 대신 뛰어놀게 해야

그 대신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라. 책 읽는 부모 밑에 자란 애는 영락없이 책을 사랑한다.

책의 지혜를 믿고 책에서 길을 찾는다. 애들은 못 읽게 하면서 어른은 항상 가까이하며 읽는 책.

애들은 언젠가 나도 저 책 안을 탐험하리라고 날마다 마음먹는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됐다고 해서 한꺼번에 책을 바쳐서도 안 된다.

책을 고르는 일도 중요한 교육이다.

매주 한 권씩 서점에서 읽을 책을 고르게 해야 한다.

책 표지를 보고 내용을 뒤적이며 재미있고 유익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설령 이번엔 잘못 골랐다 해도 다음에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좋은 선택은 좋은 경험에서 나오고 좋은 경험은 잘못된 선택에서 나온다.


우리 집 일곱 살 딸애는 초등학교에 가기 전까지 글을 안 가르쳐주고 “애들은 뛰어놀아야 한다”고 늘 가르쳤다.

때가 되면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게 되리라고 말만 할 뿐 책의 참맛을 이해할 시기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부모 몰래 책을 읽으며 끽끽거린다.

상상해 보시라. 초콜릿이 집 안 가득 쌓인 집에서 자란 딸이 과연 초콜릿을 좋아할까?

같은 이치로, 질리도록 쌓여 있는 책은 읽기 욕망을 일깨우지 못한다. 결핍이 욕망을 낳고 금지가 달콤함을 알려준다.


요즘 아이들의 문제는 유익한 것을 욕망하지 않는 데 있다.

아이가 욕망하기 전에 부모가 알아서 코앞에 대령하니까 말이다.

책이 읽고 싶기 전에 책이 눈앞에 와 있고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해외연수를 가게 된다.

때가 되면 책을 사주고 달이 차면 학원에 보내고 해가 지나면 알아서 해외연수를 보내준다.

잘 짜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부모가 유능한 부모로 통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애들은 책을 욕망하지 않고 지식을 욕망하지 않는다.

알아서 척척 제공될수록 아이는 소중함을 모른다.

항상 읽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는 일! 그것이 독서교육의 시작이며 창의적인 사고의 출발이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부모는 아이의 훌륭한 독서도우미였다가, 이내 독서방해꾼으로 돌변한다.

자녀가 중학교에만 들어가면 책 읽는 자녀는 공부 안 하고 딴짓 하는 애가 돼버린다.

고등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시행할 때 가장 심한 방해꾼 또한 학부모다.

고등학교 수업에서 왜 독서를 하냐며 항의하는 부모가 꼭 나타난다고 국어교사는 하소연한다.

우리나라 부모는 문제풀이가 아니면 공부가 아니라고 믿는 시대에 홀로 살고 있다.

 

결핍이 욕망을, 과잉은 거부를 낳아

평생 스스로 삶을 탐구하는 자녀를 원한다면 그들이 책을 욕망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설령 자녀가 시험 때 책을 읽더라도 야단치지 말고 그 달콤한 책의 꿀맛을 즐길 수 있도록 여유 있게 지켜보시라.

우리 시대 부모에게 가장 필요한 점은 오래 기다려주는 인내심과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존감이다.


결핍이 욕망을 낳듯 과잉은 거부를 낳는다.

지식 소화 불량으로 아예 지식욕이 거세되지 않도록 그들의 삶을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

그리고 답이 글자의 숲에 있음을 일러주어야 한다.

부모의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언젠가는 우리 아이를 먼 지적탐험의 길로 떠나도록 인도할 것이다.

 

동아일보 2010. 7.13.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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