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하지 말고 하는 것 자체를 칭찬하세요!
손의 힘이 부족한 영아는 종이와 펜이 있으면 딱딱 점을 찍거나 찍찍 긋기에 여념이 없지만 5세 전후가 되면 점점 글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이름이나 숫자 쓰기를 알려주면 곧잘 쓰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쓰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글씨 쓰기를 무리하게 요구해선 안 된다. 그에 앞서 아이의 운필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크하는 것이 순서.
운필력이란?
아이가 글씨 쓰기가 가능하고, 그림을 그릴 때 사람이나 사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시기가 되었는데도 또래보다 뒤처지는 느낌을 받으면 운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걱정한다. 이때 운필력이란 필기구를 손에 쥐고 글씨를 쓰는 힘을 가리키는 말로 운필력이 부족한 아이는 글씨 쓰기나 그림 그리기뿐만 아니라 가위질, 칼질 같은 정밀한 손 조작을 요하는 활동을 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이가 유아 교육기관에서 하는 활동에 어려움을 느끼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혹시라도 아이가 좀 늦다고 판단되면 조급해하지 말고 현재 아이의 운필력 상태를 파악해 지금부터라도 운필력 키우는 훈련을 도와주자. 뭐든지 빠르게 흡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아이들은 부모의 긍정적인 말 한마디에 따라서 얼마든지 운필력이 좋아질 수 있다.
운필력이 학습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운필력은 어렸을 땐 그저 조금 느린 정도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더라도 아이가 학령기가 되면 학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다. 백미숙학습상담연구소 백미숙 소장은 운필력이 떨어지면 아이의 학습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질문에 “운필력은 쓰기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쓰기 능력이라고 하면 크게 ‘쓰기를 잘하는 아이’와 ‘쓰기에 어려움이 있어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아이’로 나누어볼 수 있어요. 아마도 아이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게 되겠죠. 이 경우 아이가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안 한다거나 필기하는 것을 싫어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은 알림장 쓰는 것을 안 하는 식이죠”라고 대답한다. 자신이 글씨를 못 쓴다는 생각이 강하면 쓰는 것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내 글씨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콤플렉스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고르지 못한 글씨에 너무 신경 쓰면 집중력을 떨어뜨려 중요한 학습 내용을 놓치기 십상. 하지만 취학 아동이 순전히 손에 힘이 없어서 쓰기 능력이 떨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백미숙 소장은“특별한 성장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손에 힘이 없는 아이는 부모가 조금만 지켜봐도 금세 눈에 띄기 때문에 손 조작 놀이를 한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하는 적당한 훈련을 통해 대부분 좋아집니다. 그보다는 손의 힘이 강해졌는데도 어렸을 때 운필력 활동 시 부모에게서 받은 부정적인 피드백 때문에 학습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 아이가 운필력이 떨어져서 고민이라면 부모 스스로도 지도 방법에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한다.
함부로 운필력 키우기에 도전하지 마라!
너무 이른 연습은 곧 스트레스_ 아이가 필기구를 손에 쥘 수 있는 순간부터 운필력 연습은 시작된다고 보지만, 5세 전후로 아이가 한글과 숫자, 알파벳 등을 쓰는 것에 관심 있어 할 때가 훈련의 적기다. 다른 아이보다 빨리 읽고 써서 우리 집 자랑거리를 만들려는 부모의 욕심에 너무 빨리 시작하면 아이는 학습 스트레스를 받아 쓰기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한꺼번에 많이 하려는 생각도 버려라. 아이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만큼만 조금씩 하다가 차츰 늘려나가면 된다.
처음엔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_ 무턱대고 연필 쥐는 법부터 가르칠 게 아니라 크레파스, 색연필 같은 쓰기 편한 도구로 간단한 도형 그리기, 색칠하기 등 쉬운 것부터 시작한다. 아이가 생각하는 것을 혼자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정도가 되면 글씨를 쓸 수 있는 운필력이 있다는 증거. 한글, 숫자, 알파벳 등을 덧쓰기, 따라 쓰기부터 연필을 쥐고 쓰는 연습을 차근차근 시작해도 좋다.
부모가 함께 놀이처럼 재미있게_ 아이들은 혼자 하는 것보다 부모와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단순한 선 긋기를 할 때도 부모가 “꼬불꼬불” “지그재그” “동글동글” 같은 다양한 의태어로 흥미를 유발하면 집중력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폭넓은 사고와 언어 구사 능력을 키우는 데도 효과적이다.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려워하면 아이가 짜증을 내면서 포기하기 전에 부모가 손을 잡고 같이 써보는 것이 좋다.
실생활에서의 운필력 키우기_ 꼭 책상 위에서 하는 활동만 운필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게 더 자연스럽다. 혼자 스스로 밥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에게 흔히 집기 편하라고 포크 사용을 권한다. 그중에는 아이가 젓가락질을 하면 자꾸 흘려서 치우기 귀찮은 이유도 있다. 아예 젓가락 한 쌍을 한 손에 쥐고 움직이기 어려운 영아가 아니라면 아이가 젓가락질을 하고자 할 땐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손의 힘을 길러주자.
긍정적인 피드백, 지적 아닌 칭찬의 말하기_ “왜 이렇게 못 그리니” “안내선 대로 꼭 맞게 그려야지” “반듯하게 또박또박 써라” “글씨는 사람의 얼굴인데 ○○는 참 못생겼네” “또 이렇게 엉망으로 쓰면 맞을 줄 알아” 등 운필력 연습을 하면서 무심코 던지는 부모의 말이 아이의 쓰기 능력을 망칠 수 있다. 아이는 반드시 잘 써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며, 무의식중에 지적을 받았던 말들을 떠올린다. 말하기는 술술 잘하면서도 글로는 선뜻 자신 있게 표현하기를 힘들어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가 글씨를 쓸 때 맞았나 틀렸나를 먼저 평가하기보다 글씨 쓰기 연습을 하는 것 자체를 칭찬해야 한다. 아이가 성취감을 느끼고 운필력 연습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선을 잘 그렸네” “열심히 했네” “표현이 재밌네” 같은 칭찬의 말을 많이 하면 좋다.
표현의 자유를 도와주는 환경 조성_ 글씨체가 자리 잡은 어른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보면 안 된다. 삐뚤빼뚤한 글씨도 글씨체가 잡혀가는 과정 중 하나. 좀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방바닥이나 벽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해서 스트레스라면 벽면에 전지를 붙여 자유롭게 낙서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자. 눕거나 턱을 괴는 자세는 잠깐은 편하지만 장시간 했을 때 몸의 통증을 호소하게 만들며, 향후 학습 태도에 안 좋은 버릇으로 남는다. 되도록 상을 펴고 바닥에 앉거나 책상에 앉아 허리를 편 자세로 운필력 훈련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다양한 놀이로 손의 협응력 키우기_ 색종이 접기, 가위로 오리기, 신문지 찢기, 찰흙․밀가루 반죽 놀이 등을 자주 하면 손 근육이 강해지는 효과가 있다. 아이가 잘하지 못하면 부모가 먼저 보여주고, 아이가 따라 할 수 있게 하여 좀 더 쉽게 느끼도록 접근한다.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아이는 콩과 과자 같은 작은 것을 집어 나르는 놀이를 해도 괜찮다. 하지만 이러한 놀이들도 아이에게 스트레스가 되면 안 된다. 아이가 즐거워하고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놀이를 준비한다.
운필력 키우기에 도움 되는 놀이책
스티커를 떼었다 붙일 수 있는 스티커북, 완성 그림을 떠올리며 퍼즐 조각을 맞추는 퍼즐북, 찢기와 오리기․붙이기․접기 등을 할 수 있는 활동북, 그리기․색칠하기 등을 할 수 있는 미술놀이북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과 어휘 능력을 키워주는 글, 손 조작을 필요로 하는 놀이 자료를 통해 공간 지각력, 문제 해결력, 주의 집중력, 기억력, 눈과 손의 협응력 등 감각을 자극하는 놀이책이 좋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책도 친근하게 다가가 집중력을 높여주는 베스트 아이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장소 꾸미기 동화나라 역할놀이 스티커북>(웅진주니어)
<구름빵 퍼즐북>(한솔수북)
<손놀이 미술놀이>(애플비)
<코코몽 찢기와 오리기>,<이야기하며 우리 집 만들기> <이야기하며 자동차 접기>(아이즐북스)
<뽀로로 색칠이 제일 좋아>(키즈아이콘)
<난 사람을 잘 그려요> <난 동물을 잘 그려요>(보물창고)
<오려봐 정말 재미있는 종이 오리기>(미세기)
운필력 키우기 연습장
오른쪽 페이지의 운필력 키우기 연습장을 아이와 함께 해보세요. 부모가 직접 스케치북에 그림과 점선을 그려서 아이가 따라 쓰거나 그릴 수 있는 운필력 연습장을 만들어주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