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이나 네덜란드는 참 느렸다. 대통령 특사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취재하기 위해 이 곳에 나흘째 머무는 동안 특사단과 취재원은 이 나라의 느긋함에 여러 번 분통을 터뜨렸다.
네덜란드의 버스 운전사는 길을 몰라 늦으면서도 언제 오냐는 전화에 "안전운행에 방해된다"며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포르투갈 공항에서는 직원이 앞 승객과 30분 넘게 이야기하면서도 태연했다.
두 나라는 근로 여건도 여유롭다. 네덜란드는 1년 평균 1,300시간 근무하는데 이는 한국보다 1,000시간 적다. 포르투갈에서 목을 다쳐 병가를 냈더니 주치의가 두 달 이상 일을 못하게 해서 애를 먹었다는 한국인도 있었다.
반면 두 나라는 한국을 이해하지 못했다. 한번은 세계적인 매체가 한국의 빠른 택배문화를 게재했길래 포르투갈 대사관 직원이 이를 자랑했다. 그랬더니 "왜 그렇게 사나. 택배를 오늘 못 받는다고 당장 무슨 일이 생기나"는 핀잔이 돌아왔단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러면서 "한국처럼 사나 우리처럼 사나 버는 돈은 같다"고 꼬집는다. 맞다. 한국과 두 나라의 국민소득(GDP)는 엇비슷하다.
하지만 삶의 질은 달라 보였다. 재정위기에도 포르투갈 사람들은 표정이 밝았다. 좁은 땅에 지반이 약한 네덜란드는 덕분에 낮은 건물과 들판으로 채워져 아름다웠다.
비결이 뭘까. 이곳에 온 한국인의 말을 들어보면 네덜란드는 값싼 외국 농산물에 브랜드를 붙여 비싸게 팔 정도의 상업ㆍ물류 강국이다. 포르투갈은 사회보장세가 30%를 넘지만 국민들은 기꺼이 낸다. 두 나라 모두 집이나 차를 한 번 사면 끝까지 쓰는 검소함을 지니고 있다. 근로 시간이 적다지만 꼭 필요한 업무만 집중하는 합리성도 강점이다.
가난한 한국이 60년 만에 세계10위권 경제대국이 된 것은 느긋하지 않았던 덕이었다. 하지만 네덜란드나 포르투갈처럼 개인 행복을 위한 복지를 원하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이런 민심의 변화를 알아보는 정치가 있을까.
출처: 한국일보 [기자의 눈/임세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