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돌아온다', '돌아와서 기쁘다'는 뜻
돌이 잔치라고 하면 주인공은 물론 돌이 된 아이, 곧 '돌쟁이'다. 그런데 아이는 어리므로 부모가, 가족이 주인공이 된다. 아이는 아직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므로 아이의 행동은 다 어른이 해석을 하는 것이다.
" 앉아서 천 리 서서 구만 리 보는 삼시랑 할머니, 어리석은 백성이 무엇을 압니까? 그저 그저 비노니 우리 아기 호박 크듯 오이 크듯 무병 무탈로 무럭무럭 자라게 하소서, 그저 그저 비옵나이다."
이렇게 갓난아기 때부터 빈다. 돌 때에도 이런 치성을 드린다. 그러므로 돌은 삼신에 대한 고마움도 된다. 나는 전북 남원 운봉이라는 고을에서 형제 많은 집에 태어났는데, 내 밑으로 동생 넷이 내리 죽어 바로 밑의 동생은 여덟 살 터울이다. "이 불쌍한 것, 세상에 태어났으면 돌이라도 지내고 가지. 아이구." 하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 돌까지 살고 그 후로도 쭉 살아 이 세상을 활개치고 다니며 사는 것은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런 행복은 사실 돌잔치에 예견(豫見), 예정이 된 것이다.
돌은 '돈다'는 뜻이다. 돌아왔다는 돌, 일 년을 한바퀴 돌아왔다는 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일 년 춘하추동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을 살았다는 돌. 처음 겪는다고 해서 초도일(初度日), 쉬( ), 일( 日), 돌아왔다고 해서 주일(周日), 주년(周年)이라고도 한다. 이전 문헌을 보면 ' (수)'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돌이다.
아기는 열 달 동안 어머니 신세를 진다. 열 달 만에 세상에 태어난다. 갓난아기와 산모가 분만중에 죽는 일이 더러 있던 시절에는 무사히 태어나서 잘 크고, 잘 크는 중에 일년 돐이(돌시라고 발음한다. 전에는 '돐'이라고 썼는데 지금은 '돌'이라고 한다.) 돌아온 것은 천만다행 중에 만만다행한 일이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하루, 이틀, 사흘만 무사해도 축하 행사를 벌였다. 물론 가족 차원의 행사다. 사흘의 곱절인 이레, 즉 7일을 아기가 살면 또한 경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순조(純祖) 임금이 등극한 지 27년 만에 손자를 보니, 초사흘에 종묘(宗廟)에 계시는 조상님께 아뢰고(元孫誕生第三日告宗廟) 초이레에는 예조에서 아뢰는 대로 축하 행사를 벌였다(第七日行陳賀從 禮曺啓也)는 대목(순조실록 27년 7월)이 있다.
초이레, 다음 두 이레, 그 다음 삼칠은 21일로 '세이레'다. 대개 딸애는 세이레를 찾고 아들이면 그 곱절인 칠칠일, 즉 49일에 일곱이레를 찾는다. 그때까지 산 아이는 앞으로 그 곱절인 백일을 산다고 보아 백일을 찾고 백일을 산 아이는 일년 돌을 산다고 보았다. 돌을 지낸 아이는 이제 두 살, 세 살 그 이상을 살 것이다. 그 뒤로는 아이를 귀신이 잡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되도록 '천하게' 길러야 한다. 그러니까 생일은 첫돌이 최고라 할 것이다. 실제로 그 뒤에는 별로 아이 생일을 찾아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기는 무조건 무병 무탈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 그런 가운데 이제 백일을 지나 돌이 되면 매일매일 아기가 어찌될까 걱정하던 한숨을 돌리고 비로소 아기의 장래를 생각하게 된다. 돌이 되면 아기는 말을 하고 걷고 자기 의사 표시를 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 돌잡이가 떡을 돌린다.'는 속담이 있다. 돌잡이 아이가 동네 사람에게 떡을 먹게 한다는 이 말은 아이가 빨리 자랐음을 알리는 속담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라면 어떤 아이가 될까 궁금하고, 또 잘되기를 기도하여야 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아이를 공개한다. "우리 아이는 이제 돌이 되었다오." 하고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이런 아이가 될 것이오, 우리 부부는 그렇게 키우겠소." 하고 동네에 선언을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