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면 당연히… 잘못된 믿음을 버려라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는 없다. 하지만 모성의 정도는 엄마마다 다르다. 아이가 항상 예쁘게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사회적인 일에 더 애착이 가거나 내 몸이 힘든 것이 우선일 때도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엄마들이 ‘내가 과연 엄마의 자격이 있는가?’라고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과연 모성의 정도는 있는 것일까?
엄마의 뇌는 자신과 아이에 대해 판단할 때 비슷한 부분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아이를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아이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기도 하고 자기 몸이 힘들어도 아이를 보살피려고 한다.
하지만 엄마라고 해서 자기 자식이 무한정 사랑스럽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까? 아이를 돌보는 일이 행복하기만 할까? 가끔은 아이가 귀찮고 미워지기도 하는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모성에 대해 의심하면서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해맑은봄심리발달센터 박민기 원장은 “보통 모성이라고 하면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ㆍ육체적 본능을 의미합니다. 많은 엄마들은 모성이라고 하면 생물학적인 의미로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떠올리죠. 하지만 실제적인 모성의 의미는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성의 정도는 본능적인 부분 외에도 사회적인 신념, 교육과 개인적․환경적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를 수 있죠”라고 설명한다.
모성은 타고나는 것일까?
한 달 전 아기를 출산 한 김수연 씨는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하루 종일 엄마를 찾고 밤에도 몇 번씩이나 깨서 우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다 보니 밥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을 새도 없다. 계속 보채는 아기를 보면 예뻐 보이지도 않고 힘들다는 생각만 가득하다는 수연 씨. ‘내가 힘들다고 아기를 예뻐하지 않다니… 엄마인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하고 문득 죄책감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 때 많은 엄마들은 자신의 모성을 의심한다. 엄마는 위대한 존재다. 하지만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엄마 역할을 뚝딱 해낼 수 있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자.
아이를 낳기만 하면 모성이 샘솟을까? 아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아주아주 예쁘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빨갛고 쭈글쭈글한 모습에 거부감이 든다는 사람도 있다. 출산하느라 힘들고 아프다 보니 혹은 앞으로 해야 할 엄마의 역할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아기가 마냥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가 되어도 당장은 아기가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아기이기 때문에 품에 안고 젖을 물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아기를 돌보고 씨름하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점점 더 아기가 예뻐 보이고 애착이 가는 것이다. 박민기 원장은 “모성은 본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로 인해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품에 안고 젖을 주고, 계속 함께 있으면서 아기에게 정이 들고 사랑이 깊어지는 것이죠. 모성은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부분이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모성의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은 없다
‘엄마라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잘못된 믿음
사회에선 엄마의 역할은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엄마에 의해 아이의 미래가 좌우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상적인 엄마는 아이를 끔찍이 예뻐하는 모습이라고 막연히 떠올린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무조건 희생하는 것이 진정한 엄마의 모습이라고 여긴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양육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엄마라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자기를 끼워 맞추려고 하면 정작 엄마는 불행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박민기 원장은 “사회에서 말하는 모성의 기준은 굉장히 높아요. 자기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상적인 모성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모성을 의심하고 ‘난 좋은 엄마가 아닌 건가?’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 그 기대치에 맞추려는 것은 비현실적인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실 속에서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어떤 걸까? 바로 합리적인 엄마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엄마가 집에 있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모유 수유가 너무 힘든데도 억지로 하는 것이 좋은 엄마일까? 각자 가정의 사정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현실 속에서’ 좋은 엄마다. 가정의 사정과 엄마의 행복, 그리고 아이를 위해 해줘야 할 것을 적절히 챙기는 것이 실제로는 가장 좋은 엄마인 것이다.
부족한 엄마의 역할, 대체 가능해
유아기는 인생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시기로, 이때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는 엄마가 아이에게만 몰입해야 할까? 박민기 원장은 “여기서 엄마의 역할이라는 의미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엄마라는 의미는 엄마인 그 대상 자체가 아니라, 엄마의 역할과 환경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엄마가 만약 그 역할을 모두 할 수 없다면 주변 사람이나 사회적인 기관의 도움을 받아 ‘엄마의 역할’을 보충해주면 됩니다. 그렇게 해도 아이가 자라는 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엄마의 역할’은 일정 부분 대체가 가능한 것이죠”라고 말한다.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나의 특성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것으로 채워주면 충분히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취 욕구가 강한 경우 양육보다 사회적인 일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다. 그렇다면 난 왜 이럴까라고 죄책감을 가지거나 고민하는 것보다 그것을 인정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도 엄마에 대한 현실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하루 종일 돌봐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진다면 아이는 엄마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미안해한다. 그러므로 엄마는 ‘사회생활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리고, 엄마가 회사에 가기 때문에 아이가 낮에 놀이방에 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아이도 지금의 상황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이해한다.
사회 변화에 따라 모성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사회적으로 모성이 굉장히 강조됐다. 사회적인 일은 대부분 남성이 하고 여성은 가정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 여성스러운 것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이 강했으며 양육은 여성의 역할로 구분 지어졌다.
하지만 사회가 달라졌다. 요즘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직장을 다니며 개인적 성취를 경험해본 첫 세대다. 사회 진출을 하면서 자신의 엄마처럼 아이에게 몰입할 수 없어진 것. 그런데 자신이 성장할 때는 자식에게 희생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머릿속의 헌신적 모성과 자아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박민기 원장은 “모성 즉 엄마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변화와 여성의 가치관에 따라 모성의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라고 조언한다.
아이가 밉거나 사랑에 집착하거나
아이가 이유 없이 밉다거나, 아이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거나, 아이를 예뻐하는 정도가 과도하다면 엄마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이 때문에 죽을 것 같고, 아이 때문에 행복이 갈린다면 그것은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친정어머니와의 애착 유형이 내 아이에게 대물림된 경우
어떤 엄마는 형제 중 첫째 아이가 자꾸 못마땅하다. 둘째 아이는 잘못을 해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데 비해 첫째 아이의 작은 잘못에는 불같이 화가 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릴 적 친정어머니가 큰오빠만 예뻐하고 자신은 구박하기만 해서 첫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었던 것. 박민기 원장은 “이유 없이 어떤 감정이 생기는 것은 원가족에서 문제가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친정어머니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죠. 많은 엄마들은 친정어머니의 양육 형태를 자기도 모르게 아이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아이가 이유 없이 밉다거나 아이 돌보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낀다면 자신의 가족력에 대해 알아본다. 이런 경우 어린 시절 경험한 부정적 정서와 관계가 깊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가슴의 상처를 내 아이에게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박민기 원장은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왜 그러는지를 스스로 이해해야 합니다. 친정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 그 시절 상처받은 아이를 떠나보내야 하죠. 친정어머니는 가해자, 나는 피해자라는 감정을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은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자신의 아이에게 물려줄지, 새롭게 살아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좋은 엄마 아래서 자라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도 나쁜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죠. 좋은 엄마가 될지, 나쁜 엄마가 될지는 엄마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조언한다.
아이에 의해 행복이 좌우되는 의존적인 엄마
어떤 엄마는 아이의 미래를 위해 매니저처럼 뛰어다니는 것이 모성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고 ‘아이는 나의 삶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듯 유별날 정도로 밀착형으로 아이를 키우는 강력한 모성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는 엄마가 아이에게 의존하는 것으로 엄마 삶의 모든 요소가 아이에게 달린 것이다. 이런 엄마는 아이의 반응에 따라 엄마의 기분도 덩달아 달라진다. 아이가 우울해하면 함께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엄마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기쁘면 엄마도 기쁘다. 이렇게 엄마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이 아이에 달려 있으면 아이는 엄마의 인생까지 함께 사는 느낌으로 부담스러워한다.
박민기 원장은 “엄마의 가장 큰 역할은 어릴 때는 아이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워주고 나중에는 아이를 독립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엄마 없이 독립적으로 잘 사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죠. 아이와 거리를 두고 스스로 하도록 해야 할 시기가 되었는데도 엄마가 해주려고 한다거나 거리를 두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아이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아이가 현실 속에서 잘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엄마가 모든 것을 다 쏟아주면 아이는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된다거나 다른 사람이 주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현실에서 잘 사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적당히 좋은 엄마가 가장 좋은 엄마라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