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은혜

조회 1350 | 2015-07-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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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내 밑으로 여동생 한 명이 있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그때부터 나와 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셨다.
못 먹고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유롭지 않은 생활이었다.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한 지 2년 만에 결혼하였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좋았고.
시어머니도 나를 처음부터 맘에 들어 하셨던 것 같다.

결혼한 지 벌써 10년.
10년 전 결혼하고 만 1년 만에 친정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셨다.
엄마의 건강보다 수술비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고심 끝에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남편의 성품은 알았지만, 큰 기대를 하는 것조차 미안했다.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내일 돈을 어떻게든 융통해 볼 테니
오늘은 걱정하지 말고 푹 자라고 했다.

다음 날,
친정엄마를 입원시키려고 친정에 갔지만,
어머니 또한 선뜻 나서질 못하셨다.
마무리 지을 게 있으니 4일 후로 입원을 미루자고 하셨다.
엄마가 마무리 지을 것이 뭐가 있겠나...
수술비 때문이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때 시어머니께 걸려오는 전화.

"지은아 너 우니? 울지 말고 내일 나한테 3시간만 내 줄래?"





다음 날 시어머니와의 약속장소로 나갔다.
시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무작정 한의원으로 데려가셨다.
예약 전화를 하셨는지 병간병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맥을 짚어 보시고 몸에 맞는 한약 한 재를 지어주셨다.

그리곤 다시 백화점으로 데려가셨다.
솔직히 속으론 좀 답답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닌 이유도 있지만,
시어머니께 죄송한 마음도 컸던 것 같다.

운동복과 간편복, 선식까지 사주시고 난 후에야
집으로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날 방으로 부르시더니, 말씀하시기 시작했다.

"환자보다 병간호하는 사람이 더 힘들어.
병원에만 있다고 아무렇게나 먹지 말고, 아무렇게나 입지 마"
그리곤 봉투를 내미셨다.

"엄마 병원비에 보태 써라.
네가 시집온 지 얼마나 됐다고 돈이 있겠어.
그리고 이건 죽을 때까지 너랑 나랑 비밀로 하자.
네 남편이 병원비 구해오면 그것도 보태 쓰거라.
내 아들이지만 남자들은 본래 유치하고 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부부싸움 할 때 친정으로 돈 들어간 거
한 번씩은 꺼내서 속 뒤집어 놓는단다.
그러니까 우리 둘만 알자."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극구 마다했지만,
시어머닌 끝내 내 손에 꼭 쥐여주셨다.
나도 모르게 시어머니께 기대어 엉엉 울었다.
2천만 원이었다.
시어머니의 큰 도움에도 불구하고,
친정 엄만 수술 후에도 건강을 되찾지 못해
이듬해 봄, 결국 돌아가셨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병원에서 오늘이 고비라는 말을 듣고,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남편에게 알렸다.
그때 갑자기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울면서 전화 드렸더니,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남편보다 더 빨리 병원에 도착하셨다.
엄마는 의식이 없었지만, 난 엄마 귀에 대고 말했다.

"엄마.. 우리 어머니 오셨어요. 작년에 엄마 수술비 해주셨어.
엄마 얼굴 하루라도 더 볼 수 있으라고..."

엄마는 미동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시어머니는 지갑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서 엄마 손에 쥐여주셨다.
우리 결혼사진이었다.

"사부인.. 저예요. 지은이 걱정 말고 사돈처녀도 걱정 말아요."
지은이는 이미 제 딸이고,
사돈처녀도 내가 혼수 잘해서 시집 보내줄게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편히 가세요."

그때, 거짓말처럼 친정엄마가 의식 없는 채로
눈물을 흘리시는 것이었다.
엄마께서 듣고 계신 거였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편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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