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이왕이면 화끈하게
알고 지낸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알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는 것만 도 못한 경우도 많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K씨라고 하자)를 대상으로 그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그 K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K씨를 칭찬하지도 않지만 험담하지도 않는다. 모르니까. 그러나 K씨를 잘 아는 사람은 두 패로 나뉠 것이다. 칭찬하는 부류와 험담하는 부류로.
만약 K씨에 관한 험담이 이야기의 주류라면 이럴 때 K씨에 대하여 잘 알면 잘 알수록 험담의 강도는 강해진다. 그의 약점까지도 잘 아니까.
이처럼 사람을 많이 알거나 잘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잘 안다는 게 나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사귀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왕 사귈 바에는 화끈하게 사귀어야 한다. 그래야 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부부관계든 친구관계든 이웃관계든, 서로 만난 인연을 소중이 여기고 이왕이면 까짓 것 화끈하게 사귀는 거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요령이다.
알고 지낸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알기 때문에 차라리 모르는 것만 도 못한 경우도 많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K씨라고 하자)를 대상으로 그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그 K씨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K씨를 칭찬하지도 않지만 험담하지도 않는다. 모르니까. 그러나 K씨를 잘 아는 사람은 두 패로 나뉠 것이다. 칭찬하는 부류와 험담하는 부류로.
만약 K씨에 관한 험담이 이야기의 주류라면 이럴 때 K씨에 대하여 잘 알면 잘 알수록 험담의 강도는 강해진다. 그의 약점까지도 잘 아니까.
이처럼 사람을 많이 알거나 잘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잘 안다는 게 나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사귀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왕 사귈 바에는 화끈하게 사귀어야 한다. 그래야 아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사귐에 있어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부부관계든 친구관계든 이웃관계든, 서로 만난 인연을 소중이 여기고 이왕이면 까짓 것 화끈하게 사귀는 거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요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