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특히 어린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칠 때에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아이에게 맞는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도 마찬가지이다. 어른의 입장에서 억지로 아이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글을 가르칠 때 먼저 'ㄱ, ㄴ, ㄷ, ㄹ'을 가르친 후 '가, 나, 다, 라,'를 가르치고, 다시 '가방, 나비, 다람쥐, 라디오'를 가르치는 한글을 합성시키는 방법으로 가르치면 아이가 금방 한글 법칙을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착각일 뿐, 한글이 단순히 ‘복잡한 모양’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는 전혀 맞는 방법이 아니다.
◆ 기호 보다 의미가 먼저!
언어는 고도의 추상 세계이며 사회적인 약속으로 만들어진 기호이다. 그런데 단순히 기호만을 가르치며 아이에게 억지로 외우게 하는 것은, 의미를 담고 있는 언어로서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머리 속에 의미 없는 기호를 입력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이 방법은 글자가 가진 의미를 아이가 충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한글을 가르치는 적당한 방법이 아니다.
유아에게 이런 방식으로 한글을 가르친다면 아이를 어떻게든 닦달해서 외우도록 하게 되고, 아이는 무조건 설명해 준 대로 법칙을 외우자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결과는 뻔하다. 기계적으로 한글이란 기호를 외운 아이는 책을 들고 글자를 한자 한자 읽을 줄은 알아도 그 글자들이 담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저히 책에 담겨있는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책 읽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없다. 나아가서는 이때 받은 스트레스로 배우는 것 자체를 싫어하게 되어 오히려 아이가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학습 욕구를 꺾는 역효과를 낼 뿐이다.
이외에도 가방의 '가', 나비의 '나', 다람쥐의 '다'와 같이 가르치거나, 또는 '가방, 나비, 다람쥐'처럼 낱말로 한글의 순서를 가르치는 방법이 있다. 이런 방법은 앞에서 얘기한 것보다는 좀더 쉬운 방법이기는 하지만 역시 아이의 인식 상태를 고려했다고 볼 수 없다. 아이가 알고 있는 사물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가'자를 가르치기 위해 가방이라는 사물을 끌어다 맞춘 것에 불과하므로, 역시 '가나다라'를 먼저 가르치는 방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 아이는 이미지로 글자를 기억한다.
아이를 데리고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러 갔을 때 이런 경험을 한적이 있을 것이다. 한글을 잘 모르는 아이가 자기가 좋아하는 비디오 테이프는 척척 골라낸다. 인어공주를 좋아하는 아이는 글자만 보이는 테이프도 용케 골라낸다. 이것은 아이들이 전체적인 이미지로 사물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어서 인어공주에 대응하는 또 다른 그림으로 ‘인어공주’라는 글자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물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사물의 이름을 알아맞히거나 읽는다. 이때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자신의 느낌을 점점 뚜렷이 해 나가고 그 느낌으로 서서히 한글을 알아 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한글을 자기 세계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비로소 한글이 아이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생명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즐겁게 추상의 세계인 한글을 탐색할 수 있고, 자신의 느낌이 꽉 차는 날, '아!' 하고 한글 법칙을 통찰하게 된다.
그런데 이 때 아이는 느낌으로 글자를 읽고 있는데 엄마가 아이의 이런 인식단계를 무시한 채 엄마가 알고 있는 한글 법칙을 설명하며 외우라고 강요한다면 당연히 아이는 흥미를 잃고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물론, 낱자를 가르치는 방법으로도 한글을 떼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글을 뗐다는 것은 한글을 의미와 상관없이 단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어른들이 갖는 한글학습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으로 아이는 스스로 한글의 세계를 탐색하지 못하고 오직 엄마가 일러주는 간단한 공식만 외우는 셈이다. 이런 교육은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는커녕,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창의력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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