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거리 하나 없어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른들의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고민하고 아파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내내 알아채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의 내면에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세상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없다. 길가의 풀 한 포기도 스트레스를 받는데, 하물며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이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그건 걱정 하나 없어 보이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아도 이를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생후 12개월 이전까지는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이므로 아기가 보여주는 눈짓, 손짓, 발짓 등의 모든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아기에게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스트레스는 덜어주고, 인성 발달에서 꼭 필요한 스트레스는 잘 다뤄나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다.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박준현 교수는 스트레스에 강한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 위해서는 부모의 양육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양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이가 독립된 성인으로 자라나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호기심과 활동성이 왕성해질 때는 많이 제한하기보다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주기 위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죠. 저희 병원에서 스트레스에서 회복하는 힘인 회복 탄력성이 높은 성인들을 조사한 결과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합리적인 설명을 해준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이의 스트레스를 줄이는 동시에 이를 견디는 힘도 키워주는 좋은 노력입니다.”
아이가 말하는 ‘아이표 스트레스’
걷기가 너무 무서워요 |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 다니던 아이가 두 발로 걷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공포다. 아이가 혼자 뒤뚱뒤뚱 걸어갈 때 엄마는 아이를 계속 주시하면서 아이와 얼굴이 마주쳤을 때 응원하고 격려해주도록 한다. 그래야 아이가 힘을 얻고 독립에 따른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해나갈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시기에 아이가 넘어질까 너무 쫓아다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간혹 엄마가 아이의 걷기를 꼭 완수시켜야 하는 숙제로 생각해 아직 준비가 안 된 아이를 자꾸 걸어보게 하거나 걷지 못하면 지나치게 불안해하기도 한다. 걷기를 강요하거나 손을 잡고 걸리다 갑자기 손을 확 놓아버리면 아이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보통 전문가들은 생후 18개월까지는 걷지를 못하더라도 안심하라고 한다. 아이의 걷기를 지켜보는 부모의 시선은 너무 조급해도, 너무 느긋해도 안 된다.
밥 먹기 싫은데 자꾸 먹으래요 | 아이에겐 먹기 싫은데 먹어야 하거나 반대로 먹고 싶은데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것만큼 큰 스트레스는 없다. 사실 아이가 적게 먹는 경우 그게 아이의 양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지나치게 늘리려 할 때 오히려 문제가 생긴다. 이를 위해서는 식탁이라는 공간, 식사 시간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좋다. 아이가 식탁에서 어떤 반찬을 골라 먹는지, 그것을 얼마 만에 씹었는지, 목구멍으로 넘겼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너 그러려면 먹지 마!”라는 말은 절대 해선 안 된다. 매일 먹으라고 하던 부모가 갑자기 먹지 말라고 하면 아이는 ‘엄마가 나를 버리는 건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럽고 극도로 불안해진다.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는 아이도 사정이 좋을 것은 없다. 요즘에는 조금만 뚱뚱해도 아이의 먹는 것을 제한하는 집이 많다. 먹는 것을 빼앗기보다는 운동량을 차츰 늘리고 식단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 좋다.
동생이 생겼어요 | 동생이 생기고 나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아이는 없다. 태어난 동생을 만져보고 예쁘다고 하는 아이는 엄마의 칭찬을 받기 위해 그럴 가능성이 많다. 우선 다른 사람을 통해 동생이 생겼다는 말을 듣기 전에 부모가 직접 알리는 것이 좋다. 배 속에서 동생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한다. 단, 동생이 태어나도 더 많이 놀아주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출산 후에도 부모는 첫째 아이를 예의 주시하며 자주 안아주고 이야기해주며 “엄마, 아빠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소외받지 않도록 신경 쓴다. 하루 30분 이상은 정말 재미있게 놀아줘야 한다. 첫째 아이와 놀 때는 둘째 아이를 데리고 있지 않도록 한다. 그러면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 장난감을 누가 만지는 것이 싫어요 | 장난감을 나누어 가지고 노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 너무 욕심쟁이라 그럴까? 그렇지는 않다. 이런 아이 중에는 불안이 심한 아이가 많다. 이런 아이는 친구를 데려오기 전에 타협을 봐야 한다. “네 것을 절대 안 가져갈 거야. 놀 때만 같이 놀자. 혹시 여기 있는 장난감 중에서 절대로 같이 가지고 놀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니?”라고 먼저 물어보도록 한다. 아이가 수긍하면 친구를 놀러오게 한다. 엄마가 이런 식으로 타협을 보지 않고 “너 욕심을 부리면 어떻게? 사이좋게 놀아야지”라고 말하면 아이는 또래와 노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고 스트레스만 심해진다.
엄마와 아빠가 싸워요 | 부모의 스트레스는 아이에게까지 전달된다. 부부가 싸우는 모습은 아이에게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전해준다. 부모가 심하게 다투는 모습을 보이거나 서로 미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는 불안해한다. ‘부모가 나를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갈등이 생기고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여기기 때문에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아이에게 부모가 싸우는 모습을 되도록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지만 아이가 부부 싸움을 보거나 들었다면 묻지 않아도 이야기해줘야 한다. 아이 때문에 싸운 것이 아니며 엄마와 아빠가 싸우더라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의 불안이 조금이라도 해소된다.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
1. 자주 머리나 배가 아프다고 한다.
2. 갑자기 때리고 물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난폭한 행동을 한다.
3. 갑작스레 자주 울거나 말수가 준다.
4. 표정이 어둡고 생기가 없다.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5. 부쩍 산만해져 집중하지 못하고, 흥분해 있는 것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
6. 평소 잘 막던 아이가 잘 먹지 않고, 특별한 이유 없이 잘 크지 않는다.
7. 잘 가던 유아 기관을 갑자기 안 가겠다고 떼쓴다. 유난히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8. 대소변을 꾹 참거나 잘 가리던 아이가 다시 잘 못 가리는 등의 퇴행 현상을 보인다. 심한 경우 틱, 말더듬증, 강박 증세를 보인다.
9. 손톱을 물어뜯거나 손가락을 빨고, 눈을 자주 깜빡인다.
TIP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고 타이르려면
․ 아이와 말싸움하지 않기
․ 잘한 행동은 크게 칭찬하기
․ 분명한 상벌 규칙 정하기
․ 아이가 잘못했을 때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말하기
․ 아이가 관심을 끌기 위해 하는 행동은 무시하기
․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단순하게 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