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지우가 좋아 내가 좋아?”
정우(5세)는 동생 지우(2세)가 태어난 이후로 수시로 묻는다. 엄마가 동생을 안아주기라도 하면 정우는 동생을 끌어내고 자기가 엄마 품에 폭 안겨버린다. 이뿐 아니다. 엄마가 동생이랑 함께 자는 것을 너무 싫어해 꼭 자기를 먼저 재워달라고 떼쓴다. 간혹 엄마가 집안일이라도 하고 있으면 정우는 여지없이 동생을 몰래 꼬집고 이불로 덮어버리기 일쑤다.
“엄마, 나 이마에서 열 나”
수진(4세)이는 요즘 부쩍 아픈 척을 많이 한다. 그다지 아파 보이지 않는데도 열이 난다는 둥 힘이 없다는 둥 엄마의 관심을 요구한다. 게다가 수진이는 얼마 전부터 혀 짧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박또박 말을 잘하던 수진이가 “엄마, 맘마!” “싫어 싫어!” 등 짧은 단어만 사용해 언어 퇴행 현상까지 보인다.
질투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첫째 아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첫째. 이렇듯, 첫째 아이에게 동생의 등장은 달갑지 않다. 존재의 위협까지 느낀다.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첫째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된다. 오직 자신에게만 뽀뽀하고, 눈을 맞추고 사랑을 주던 부모가 나 아닌 또 다른 아이에게 자신보다 더 큰 애정을 보내는 것 같다.
연세누리소아정신과 이호분 원장은 “첫째 아이에게 둘째는 마치 남편이 애인을 데려와 애정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아내의 심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첫째 아이는 늘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해왔고, 부모 또한 첫아이라 유난히 호들갑스럽게 아이의 비위를 맞춰왔기 때문에 동생의 등장은 혼돈 그 자체예요. 그런 동생에게 첫째 아이가 잘해주고 예뻐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라고 말했다.
이렇듯 난데없는 동생의 등장으로 첫째 아이는 충격과 상실감에 빠진다. 이 때문에 동생을 본 아이들은 갑자기 눈을 깜빡이는 ‘틱’ 현상이 일어나거나 옷에 오줌을 싸는 등 퇴행 현상을 보이기도 하고, 부모 모르게 동생을 꼬집거나 때리고, 부모가 동생을 돌보지 못하도록 방해를 일삼는다. 심지어 엄마 젖을 다시 물려하거나 동생이 먹는 젖병을 뺏어 자신이 빨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터울이 세 살 이하인 경우에 이러한 현상이 심하다.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인식하며,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완벽하게 형성되지 못한 채 동생이 생겨 엄마에 대해 강한 집착을 하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 왜 동생을 괴롭힐까?
첫째 아이는 왜 이렇듯 동생을 괴롭히는 것일까? 이는 동생에게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 아이는 동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질투의 화신으로 변해버린다. 이때 부모는 절대 첫째 아이를 야단쳐서는 안 된다. 큰아이에게 전보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줘야 한다. 동생이 태어나면 아무래도 첫째 아이에게 소홀해지기 쉽다. 은연중에 첫째 아이가 동생을 잘 돌보고 듬직하게 행동하길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첫째 아이가 보는 데서 동생을 너무 편애하거나 애정 표현을 지나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동생이 태어나면 첫째 아이가 ‘우선’이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이런 건 못해서 엄마가 도와주는 거야’ ‘너는 동생보다 힘도 세고 잘 알기 때문에 동생을 도와주렴’ 하면 첫째 아이는 우월감을 갖죠. 반대로 ‘네가 첫째니까 동생에게 양보해야 한다’ ‘동생에게 항상 잘해줘라’ 둥 첫째 아이에게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면 오히려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고 동생을 더 미워하죠. 그런 말은 반드시 삼가는 게 좋아요.”
동생에게 자신의 힘을 확인하기 위해서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어린 동생을 마치 자신의 하수인처럼 생각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경우 집안 분위기에서 비롯돼요. 집안 분위기가 가부장적이거나 위아래 또는 남녀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아이는 은연중에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하고 이를 정당화하죠.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를 바꿔가며 어른들이 본보기를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단순히 아이만 나무란다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없어요.”
또한 주변에 자신보다 약자라고 느끼는 대상이 동생뿐이다보니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해소하려는 심리도 있다. 소유욕이 강해지는 유아기에는 자신의 장난감이나 먹는 것을 동생과 나눠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불만 때문에 동생을 더 미워하게 된다.
첫째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봐요
이호분 원장은 “첫째 아이가 동생에게 느꼈을 복잡한 감정에 대해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동생을 질투하고 괴롭힌다고 해서 부모가 혼을 내거나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지른다면 오히려 그 정도가 심해지고 정신적으로 위축돼 소심한 아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땐 큰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인정해주고 아이가 감정을 말로 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첫째 아이를 배려한다고 둘째 아이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것을 용납해서는 절대 안 돼요. 이 점에서는 확고한 원칙을 갖고 ‘동생을 때리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전달해야 해요. 엄마는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한 직후에 단호하고도 분명하게 ‘안 돼’ ‘그러지 마, ‘잘못이야’라는 말로 훈육해야 해요. 그런 다음에 ‘동생이 밉니?’라고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게 좋아요. 만일 때리거나 꼬집는 등의 행동이 반복되어 습관으로 굳어지면 이후에 고치기가 더 힘들어질 수 있어요. 폭력적인 행동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음을 일찍 인식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절제와 버릇 길들이기는 생후 8개월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동생이 태어났을 때 아이가 동생도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첫째 아이와 동생이 싸울 때 부모가 마냥 둘째 편이 되어서도 안 된다. 부모는 둘째를 과잉보호하기 쉬운데, 자칫 버릇없는 아이로 클 수 있다. 작은아이 역시 생후 8개월부터 버릇 길들이기를 시작해야 하고, 어리더라도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부모는 큰아이와 둘째 아이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동생 돌보기에 참여시켜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는 첫째 아이에게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을 표현해야 한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 첫째 아이에게 퍼부었던 사랑보다 더 진하게, 더 자주 표현해야 한다. 동생의 존재로 달라진 자신의 위치는 쉽게 적응하기 힘들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큰아이가 동생의 등장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태도가 매우 중요해요.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사전 적응 절차를 밟는 것이 좋아요. 동생을 낳기로 한 이유를 아이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동생이 생기면 얼마나 좋은지 수시로 얘기해줘야 해요. 임신했을 때 첫째 아이에게 엄마 배를 만지게 하며 동생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도록 해주고, 동생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후에는 아이가 병원에 찾아가 엄마와 시간을 보내게 하고, 출산 후에도 병원으로 아이를 데려가서 동생의 출생을 함께 축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돼요.”
동생이 태어난 후에는 아기를 보살피는 일에 큰아이를 동참시키자. 기저귀를 가져오게 하거나 동생 배를 쓰다듬으며 사랑을 표현하게 하는 등 엄마가 해야 할 아기 돌보기 몫을 첫째 아이에게 분담해주자. 첫째 아이가 잘 따라준다면 칭찬을 듬뿍해주자. 아이는 엄마와 같이 동생을 돌보는 일이 무척 재미있고 보람된다는 사실을 느낄 것이다. 또 엄마와 같이 한 것을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계획해준다. 부모와 항상 같이 즐기던 것을 동생과 나누도록 하기 위해서다.
“5세 이전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합니다. 주변이든 뭐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처음엔 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 하지만 동생은 무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모가 알려주고 그러한 동생을 돕는 데 자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동생을 받아들이는 시기가 훨씬 빨라질 것입니다.”
동생이 태어났을 때 큰아이를 적응시키는 방법 1.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가능한 한 많은 일에 아이를 동참시키자. |
형제자매, 첫 사회적 관계
동생이 태어난 후 첫째 아이가 보이는 다소 민감한 반응에 무조건 야단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요즘처럼 외동아이가 많은 가족 관계에서 형제자매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다. 부모, 형제와 상호작용을 많이 한 아이는 인지 발달뿐만 아니라 상호적인 자극을 하고 거기에 반응하기 때문에 성장 발달에도 매우 긍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는 아이의 첫 사회적 관계가 되고 가족 이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데 기본 바탕이 되죠. 형제자매는 처음엔 놀이 친구이고 자라면서 선생님, 친구, 동료, 보호자, 적, 경쟁자, 이상형 등 다양한 몫을 수행하게 돼요. 형제간의 긍정적인 감정은 공감 능력, 수용 능력, 성숙함, 책임감 등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이 때문에 첫째 아이와 둘째 사이에서 부모의 중심 잡기가 매우 중요해요.”
부모가 첫째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둘째를 편애하는 등 중심을 잘 잡지 못하면 자칫 아이들 사이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첫째 아이가 부모로부터 겪는 애정 결핍은 물론, 책임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 불안, 감정 억압, 반항 등 심리 문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부모는 각각의 아이를 개별적으로 충분히 인정해주고, 아이 각자가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히 동생이 태어났을 때, 첫째 아이에게 쏟아야 할 사랑은 충분히 넘쳐야 한다는 사실,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