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비결

조회 2686 | 2010-06-1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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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한 영어 스피치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초등학교 5학년 진시화양(11)이 “해외여행은커녕 여권도 없는 토종 영어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진짜?” 하고 놀랐다.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서울 강남에 거주한다는 말에 “그럼 그렇지” 했다.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 지레 짐작한 것이다.

진양의 집에 갔을 때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평범한 부모, 다른 아이들이 학원 다닐 때 밖에서 뛰어놀거나 곤충채집하는 시화와 동생 원준이(9)를 만난 것이다. 영어학원에 다니고 일주일에 한 번 중국어 배우는 게 두 아이가 받는 사교육의 전부. 하지만 많은 영어대회에서 수상한 트로피와 부상으로 받은 책, 벽에 붙은 빛바랜 세계지도와 국사·세계사 연대표는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느끼게 했다.

“시화가 스피치 콘테스트에 참가했을 때 심사를 맡은 외국인 교수가 묻더군요. 시화가 정말 외국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냐고. 대상을 주고 싶은데 아무리 봐도 네이티브와 한동안 지낸 걸로 의심된다면서요. 비행기도 못 타본 아이에게 외국에서 살다왔다니… 아이가 그렇게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지 새삼 놀랐고, 엄마표 영어교육이 성공했다는 뿌듯함을 느꼈어요.”

회화만 유창한 게 아니다. 독해력, 영어작문도 또래 아이들보다 서너 단계 높은 수준. 엄마 박금숙씨(41)는 전업주부, 아빠 진재호씨(44)는 영문과 출신의 바둑 전문기자지만 영어라는 말만 들으면 겁부터 먹는다고 한다. 이런 토종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영어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걸까.

“굳이 꼽자면 대화를 많이 했다는 거예요. 책 읽으면서 얘기하고 비디오 보면서도 대화했어요.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아 질문을 자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어설픈 답일지라도 궁금증을 해결해주려고 노력했어요. 신문, 인터넷, 교육서를 통해 교육정보도 습득했고요. 물론 그 정보를 무조건 받아들이지도, 다른 아이와 우리 아이를 비교하지도 않았죠. 그게 아이의 자존감과 잠재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것 같아요.”

step 1 바이링귀얼 베이비 만들기

흔히 부모는 한번쯤 아이를 외국으로 어학연수 보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방학을 이용해 영어캠프라도 보내고 싶어한다. 외국인 앞에만 서면 긴장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던 박씨는 아이들을 ‘바이링귀얼 베이비(bilingual baby; 모국어와 외국어를 동시에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아이)’로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그 과정은 평범했다. 생후부터 아이와 눈 맞춤하며 한마디씩 영어를 건네고, 점차 아이가 영어로 입을 떼게 한 것이다.

“시화가 두 돌 됐을 때죠. 당시엔 유치원 다닐 나이가 되면 영어학원에 보내고 3년 후쯤 미국에 거주하는 시누이에게 유학을 보낸다는 거창한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하지만 조기유학 다녀온 아이들이 영어는 유창하게 구사하는 반면 우리말이 서툰 모습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어요. 바이링귀얼 베이비를 만들려면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시화는 단어암기를 잘했다. 엄마가 ‘사과’와 ‘애플(apple)’을 동시에 말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단어의 의미가 같다는 걸 인지했다. “시화야, 애플 먹어야지” 하고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오게 했다. 가끔은 일부러 틀린 단어를 말했다. 그럴 때 아이가 그냥 넘어가지 않으면 충분한 학습이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한글·영어단어카드로 더 많은 단어를 익혔는데, 놀이에 익숙할 즈음엔 “Mommy?” “Yes, Daddy” “I’m here” 같은 간단한 대화를 시작했다.

“영어단어 몇 개만 끼워넣고 대화하는 모습을 본 친구가 ‘완결된 문장을 가르쳐야지, 그렇게 단어만 하면 오히려 해가 될지도 몰라’ 하더라고요. 하지만 토막단어라도 엄마와 아이가 눈을 맞추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걱정스러운 부분은 발음이었는데, 잘못된 발음을 배울까봐 단어를 주고받는 데 그치지 않고 곧바로 테이프를 찾아 들려줬어요.”

박씨는 “아이와 대화하는 순간에는 발음이나 문법이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이가 기대하는 것은 엄마의 영어실력이 아닌 엄마와 함께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tep 2 퀴즈·게임·DVD… 수준별 놀이학습

박씨는 아이에게 모르는 것이 있으면 사전을 찾아야 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일부러 사전을 펴들었다. 시화와 원준이는 어릴 때부터 영한사전이 아닌 영영사전을 사용했다.

“네 살 무렵부터 영어 애니메이션 DVD를 보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발음을 놓치면 어떡하지?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까?’ 같은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반복해서 보면 처음에 안 들리던 내용이 점차 들리거든요. 단 비디오는 자극적인 매체기 때문에 중독될 수 있고 자칫하면 시간 때우기용으로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이가 영어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 반드시 옆에 앉아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고, 보고 난 뒤에 느낌을 물어봤어요.”

시화와 원준이는 지금까지 2백여 편의 DVD를 봤는데, 모두 영어자막이거나 자막이 없는 것들이었다. 요즘에는 자신이 해석한 것과 비교하기 위해서 한글자막이 있는 비디오를 본다고. 또한 박씨는 영어동화책과 한글동화책을 반반씩 읽어줬는데, 어느 정도 지나자 시화는 문장의 구조를 이해하고, 원준이는 문장을 통째로 암기했다고 한다. 이는 아이들이 영어일기를 쓸 때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기초가 탄탄하게 쌓여서인지 보통 네다섯 살에 들어가는 영어유치원을 여섯 살에 들어간 시화는 3개월 만에 고급반으로 올라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부모보다 훨씬 영어를 잘하게 됐어요. 그렇게 되면 대부분 ‘더 이상 엄마가 가르칠 게 없다’며 학원이나 선생님에게 의지하는데, 저는 학습 분위기를 만들거나 학원에서 배운 걸 제게 설명하도록 했어요. 부모는 운동선수가 아니라 치어리더고 서포터즈라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카드놀이에서 스피드퀴즈로, 스무고개로 차츰 수준을 올려 게임을 진행했다. 아이들 수준에서 알아야할 시사·국사·과학·인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를 내고, 좋아하는 분야와 싫어하는 분야를 섞었다. 시화는 스포츠를, 원준이는 과학을 좋아한다. 현재 두 아이는 1주일에 두 번 영어토론을 한다. 토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 역시 박씨 부부의 몫이다.

step 3 영어친구 만들기

미국에 사는 고모, 영어공부를 하는 사촌언니, 미국 유학을 다녀온 큰아빠 등 주위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의 영어친구가 돼줬다. 박씨는 “신문광고를 보면 1:1 전화영어가 많은데 그것도 좋지만 굳이 돈 들여서 하기보다 가까운 친척이나 영어학원 선생님에게 도움을 받으면 아이가 낯설어하지 않고 돈도 절약된다”고 말했다.

시화는 영어유치원 선생님과 1주일에 한 번 폰티칭(phone teaching)을 했는데 교재내용을 복습, 요약하는 것부터 시작해 점차 일상생활 이야기, 사회 이슈 등을 주고받았다. 그때 인연을 맺은 선생님과 아직도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다고. 펜팔을 하면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레 표현하는 습관이 생겨 따로 영작문을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시화·원준 남매는 영어유치원, 영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인연을 잇고 있다. 박씨는 “부모들끼리도 친구가 돼야 아이들이 편하게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끼리 모이면 영어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해외에 나가면 아이들에게 ‘친구부터 사귀라’고 하잖아요. 말을 배우면 문화까지 쉽게 습득하기 때문인데, 시화와 원준이는 비록 외국에 나가본 적이 없지만 글로벌 마인드를 갖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쓰는 말이 모두 맞을까?’ 고민하지 않아요. 외국에서 10년 살아도 그 나라 사람보다 말을 잘 못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일단 기본적인 대화만 통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화는 어학연수를 받고 오는 친구들을 봐도 부러워하지 않는다. 세계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각 도시처럼 하나의 지역으로만 생각한다고. 시화는 스피치 콘테스트에서 상을 받은 뒤 부상으로 지난 5월 초 캐나다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미 책이나 TV, 인터넷으로 충분히 그곳의 문화를 접했기 때문에 낯설어하지 않았다.

step 4 비교와 경쟁 No, 격려와 칭찬 OK!

박씨 부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잘했어!”다. 인터뷰 도중 원준이가 “엄마, 이것 좀 보세요~” 하면서 박씨를 불렀는데, 대부분 엄마들처럼 “엄마 얘기하는 거 안 보이니?” 하지 않고 기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아이에게로 갔다. “그랬구나” “~해볼까?” 하면서 아이의 말에 맞장구쳐주는 그의 대화법이 인상적이다.

“남 앞에서 이야기를 잘하는 시화와 달리 원준이는 수줍음을 많이 타요. 과묵 그 자체죠. 하지만 승부욕이 강해 내기를 걸면 열심히 해요. 예를 들면 게임을 할 때 한 문제에 10점씩 주는 방식 말이죠. 또 아이들에게 ‘옆집 ○○이는…’ 같은 얘기를 절대 안 해요. 비교할 땐 ‘지난번에는 잘했는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했니?’ 하면서 스스로를 비교하게 하죠.”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면 거침없이 말을 붙이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자 “혹시 내 얘기가 잘 전달될까?” 하고 고민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럴 땐 부모가 나섰다. 손발을 쓰며 외국인과 더듬더듬 얘기하면 보다 못한 아이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1년에 한두 차례 영어인증시험이나 영어대회를 나가는데, 박씨는 이에 앞서 모의시험을 보거나 연습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대회에 나가면 시화·원준이보다 뛰어난 아이들을 만나게 돼요. 자기보다 좋은 상을 받는 걸 부러워하거나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미리 ‘네가 아는 만큼만 풀면 된다. 누구를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면 시험 보지 마’라고 말해요. 저 역시도 ‘우리 아이가 왜 저 아이처럼 못할까’ 하지 않고 ‘우리 아이랑 저 아이는 달라’라고 생각해요.”

시화와 원준이는 영어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시화는 글짓기·수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고, 어린 시절부터 재활용품을 이용해 장난감을 만들었던 원준이는 과학·환경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원준이의 꿈은 과학자가 돼 환경오염을 막는 것이라고 한다.

박씨 부부는 더 많은 사람과 교육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한 인터넷 게시판에 ‘시화네 영어일기’를 연재하고 있고 최근 ‘시화네 도토리 영어’(반석출판사)를 출간했다. 강원도 강릉에서 세계청소년바둑대회가 열리는 올 여름, 시화는 영어통역으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출처 :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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