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대신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사

조회 1466 | 2013-08-0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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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01 03:03

[실로암 복지관 수강생 3명, 오늘 양평서 사진 대회 도전]
"듣고 냄새 맡아 피사체 표현, 보통 사람과는 구도가 달라… 우린 사진찍으며 자유 얻어"

지난달 26일 오후 2시 서울 덕수궁에 조금 특별한 출사객들이 모였다. 시태훈(46)씨는 왼쪽 눈이 감긴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커다란 DSLR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그 옆엔 손바닥만 한 카메라를 꼭 쥐고, 돌담을 더듬거리는 조임숙(여·58)씨와 작은 눈을 자주 깜빡거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이흥상(65)씨가 있었다. 이들 곁엔 활동 보조인 두 명이 따라다녔다.

이들은 모두 시각장애인. 조씨와 시씨는 명암(明暗)만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는 시각장애 1급이고, 이씨는 오른쪽 눈으로만 근(近)거리에 있는 사물의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각장애 3급이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시각장애인 시태훈, 조임숙(앞줄 왼쪽부터), 이흥상(뒷줄 오른쪽에서 둘째)씨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궁궐 처마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시각장애인 시태훈, 조임숙(앞줄 왼쪽부터), 이흥상(뒷줄 오른쪽에서 둘째)씨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궁궐 처마 사진을 찍고 있다. /양익제 인턴기자
이들은 1일부터 경기도 양평 세미원에서 열리는 시각장애인 사진 대회 '마음으로 보는 세상'에 참가한다.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 사진 교실의 수강생인 이들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려고 강사 이창만(32)씨와 함께 실습을 나왔다.

이들을 지켜본 지 5분도 안 돼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란 의문이 풀렸다. 강사가 "처마를 찍어보세요" 하고 말하자 조씨가 활동 보조인 전효승(46)씨에게 묻기 시작했다. "(손으로 가리키며) 여기야?" "(카메라를 움직이며) 지금 색감이 어때?" 등이었다. 그가 찍은 사진 40여장은 초점이 안 맞은 것도, 흔들린 것도 있었지만 강사는 "구도가 참신하다"고 했다. 세 살 때 열병을 앓아 시력을 잃은 그는 2011년 처음 카메라를 만져봤다. 그는 "우리는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냄새 맡아 피사체를 본다"고 말했다.

시씨는 이날 관광객 사진을 찍은 뒤 휴대용 프린터로 인화해 선물했다. 그는 2008년부터 수·목요일마다 노인들의 영정 사진을 찍는 봉사를 해왔다. 현재까지 선물한 영정 사진만 약 1만장. 몇 해 전 단둘이 살던 어머니가 지병으로 숨지자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우울증을 덜고자 사진을 시작했다. 왼쪽 눈은 날 때부터 아예 안 보였고, 희미하게 보이던 오른쪽 눈도 10년 전부턴 급격히 나빠졌다. 간질 증세도 있어 손이 덜덜 떨린다. 하지만 그는 매일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선다.

이흥상씨의 사진 대부분엔 '길(道)'이 담겨 있다. 그는 "안 보이는 우리에겐 길이 참 중요하다"며 "내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이 보는 세상은 이렇구나' 하고 느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씨가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표현할 수 없는 사진을 찍어서 자유를 얻는다"고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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